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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Oct 24. 2021

당신 아들이 죽어서 잘됐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Snyder v. Phelps (2011)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국민의 기본권에 관해 수정헌법을 제정할 때 제1조로 제정한 것이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였습니다. 그 다음 수정헌법 제2조는 ‘무장할 자유(a right to bear arms)’입니다.


미국은 대영제국에 대항해 각 지역 방위군이 주축이 되어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형성된 국가인 만큼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국가의 근본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총기 규제에 대해 오바마, 바이든 대통령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였어도 쉽게 제도가 변하지 않는 이유가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총기 반대자들은 총기를 사더라도 최소한 자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할 것을 요청하지만, 총기를 보유한 아버지들은 ‘아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내 아들이 총이 없으면 어떻게 지키죠?’라고 반문을 한다고 합니다.


기본권 침해의 주체는 국가


또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헌법 입안자들이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수정헌법을 읽다보면 미국인들에게 국가는 개인을 도와주기보다는 ‘억압하는’ 존재로 간주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국가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종교를 강요하고, 주거공간에 침입해 영장 없이 인신을 구속하거나,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형을 집행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국가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헌법에서 국가는 안전과 교육과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적극적인 국가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수정헌법에 열거된 권리들은 오로지 연방 정부, 주 정부 등 국가 권력에 대항해서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인터넷 신문 기자가 일반인의 연애사를 취재해서 얼굴이 포함된 사진과 함께 만천하에 공개했다고 합시다. 이 때 이 기자가 헌법상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프라이버시권은 연방헌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판례에 의해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여기에는 ‘국가행위(state action)’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신문이 정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이 기자의 사생활 무단게재는 민간인의 불법행위에 불과하며 헌법상 권리침해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공무원이 종교 팜플렛 배부를 규제한다면


어떤 사람이 종교 팜플렛을 배부하고 있는데 경찰이나 동사무소 공무원이 다가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사이비 종교를 전파하시면 민원이 들어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이 경우 수정헌법 제1조에 따른 권리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여기에서는 국가에 소속된 공무원이 위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 헌법 판례에는 종교 전도활동, 반전 운동, 노동 운동 등이 종종 등장합니다. 미국 법원은 수정헌법의 정신에 따라 국가가 개인의 표현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다소 과도하다고 보이는 경우에 있어서도 말이지요.



장례식장에서 ‘죽어서 잘됐다’고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Snyder v. Phelps, 562 U.S. 443 (2011) 사건에서는 이라크 전 참전용사의 장례식장 근처에서 반전운동을 벌였던 종교단체가 문제되었습니다. 이 종교단체는 꽤 극단적인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였는데, 언론에서 이슈를 일으키기 위해 이라크전에 참전한 군인을 추모하는 장례식장 근처 공공주차장 부지에서 “당신 아들은 지옥에 갈 것,” “하느님, 전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입니다. 반전운동의 취지는 이해하더라도 나라를 위해 고생하다가 죽은 아들을 둔 부모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대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Phelps 씨의 종교단체


아들을 잃은 Snyder 씨는 Phelps 씨의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1심에서 승소를 하여 5백만 달러(60억 원)의 배상명령을 받아냅니다.


이에 Phelps 씨는 이러한 재판의 결과가 자신들의 정당한 정치적, 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라고 항소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2심에서 승소한 후, 연방대법원에서도 최종 승소를 하게 됩니다.


로버츠(Robers) 대법원장이 8명의 대법관을 대표해 다수의견을 작성하였는데, 그 표현이 다소 공격적이고 불손하다고 할지라도 당장 물리적 위험을 야기할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면 헌법상 보호되는 표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Phelps 씨의 피켓 시위가 장례식장으로부터 1km 이상 떨어진 공공주차장에서 이루어졌고 장례식장 진행을 방해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합니다.


한편 알리토(Alito) 대법관은 이 사건에서 문제된 표현은 어떤 기준으로 보거라도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so outrageous in character, and so extreme in degree, as to go beyond all possible bounds of decency”)고 하면서 문명화된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utterly intolerable in a civilized community”)라고 하였습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시민들이 상대에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최소한 명예훼손 등에 따른 민사소송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판례는 미국 법원이 어느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안입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하에서 반전운동을 했던 사람들, 아동 음란물을 배포하거나 보유한 사람들, 중학교에서 마약을 암시하는 문구로 피켓팅을 한 학생들 등 일부 사안에서 법원은 국가가 개인의 표현에 개입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지만 대체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을 널리 긍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까지 거슬러올라가는 “marketplace of ideas”라는 신념이 바탕이 됩니다. 국가가 특정 생각이나 표현이 맞다 틀리다 또는 좋다 나쁘다를 개별적으로 결정해주기보다는 자유로운 의사교환 과정을 통해 각 개인과 공동체가 스스로 필터링을 해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언뜻 듣기에 매우 이상적인 이 철학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각 개인의 ‘인내심’입니다. Snyder 씨처럼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 옆에서 열불이 나는 소리를 해도 타인의 표현이니 참아야 하고, 코로나 백신에 대한 과장된 뉴스가 일파만파 퍼져도 질병관리청이 ‘협조를 부탁하는 것’ 외에 어떤 조치를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여러 분은 어느 입장에 더 공감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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