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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Oct 24. 2021

소셜 미디어는 공적인 공간인가

Biden v. Knight Institute (2021) 





앞의 글에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국가행위’에 대항해서만 주장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곳 브런치가 미국 플랫폼이라고 가정했을 때 저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1) 브런치에 올린 글이 물의를 일으켜 경찰에 구속된다.

-> ‘경찰 구속’이라는 국가행위가 있었으므로 연방대법원에서 저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동음란물을 올렸거나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는 내란을 선동하지 않은 이상 말이죠. 


2) 브런치에 올린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해 그 사람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사과글을 올리고 50억 원을 배상할 것’을 명했다.

-> 법원의 판결은 국가행위에 포함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Snyder v. Phelps 판결에 따르면 제 표현이 불손하고 무례했다 하더라도 저 정도 수준의 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3) 브런치에 올린 글이 물의를 일으켜 카카오에서 브런치 계정을 중지시킨다.

-> 카카오가 제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긴 했지만, 카카오는 사기업이므로 여기에서는 국가행위가 없습니다. 제가 카카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헌법위반을 이유로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언뜻 논리정연한 결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도양단적인 접근방식은 오늘날 온라인 플랫폼의 엄청난 영향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하는 대표적인 인사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차단된(canceled)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워싱턴 국회의사당 시위를 조장하고 잘못된 정보를 유포했다는 사유로 트위터에서는 '영구 계정정지'를, 페이스북에서는 '최소 2년간의 계정정치' 조치를 당하였습니다. 페이스북은 지난 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표현의 수위' 문제를 판단하기 위해 세계적인 명망가들로 구성된 독립 감독위원회를 설립하여 예산을 배정하였고, 금년부터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정지가 감독위원회의 최초의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는데, 감독위원회는 '2년 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결론을 지었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가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본인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소셜미디어들을 상대로 집단소송도 제기하고 크고 작은 소셜미디어들과 협상을 하다가 최근 Truth라는 이름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직접 런칭하겠다는 계획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위의 '국가행위(state action)' 이론에 따를 때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엄연히 민간 법인이니까요. 하지만 아래의 '공적 공간(public forum)' 이론에 따르게 되면,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공적 공간인가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나의 집 안'에서만 보호받는다고 한다면, 그래서 집 밖에 나서는 순간 입조심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그 사회는 제대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의 집'에 가서 욕을 하는 것도 허용이 될까요? 이는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자유를 영위하라'는 고전적인 자유원칙에도 반하는 일이 아닐까요? 


이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중에 제공된 공간에서는 모든 개인이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즉 국가는 공적 공간에서의 표현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해왔습니다. 이를 공적 공간의 원칙(Public Forum Doctrine)이라고 부릅니다. 공적인 공간은 대체로 (1) 국가 등 공공기관이 소유/점유하고 있고, (2) 공중에게 제공되고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자세히 들어가면 도로, 공원 같은 전통적인 공적 공간(traditional public forum), 국립대학교나 시청의 광장과 같이 표현을 위해 공중에 제공된 공간(designated public forum), 공중에 제공되지 않은 공간(nonpublic forum)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법원은 앞의 두 공간에 대해서는 표현을 차별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Southeastern Promotions, Ltd. v. Conrad (1975) 판결에서는 공공 극장에서 락 뮤지컬 Hair의 상영을 금지한 것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였고, Greer v. Spock (1976) 판결에서는 군인을 훈련시키기 위한 병영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국가소유공간이라고 해서 무조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그 공간이 어느 정도는 공중의 표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특정 종교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이어서 전혀 다른 종교의 전도활동을 하는 것을 주민들이 불편해한다고 하더라도, 광장이나 도로 위에서 전도활동을 하는 사람을 공무원이 나서서 제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전도활동을 하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판사는 이를 인용해서는 안됩니다. 



기업이 조성한 마을의 도로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공적 공간'의 기본 개념 중 하나는 '국가가 소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도로와 똑같지만 알고보니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이라면 어떨까요? 


특히 미국은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자유롭게 지방자치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우리나라의 경우 국회가 법률 및 대통령령으로 자치단체의 명칭과 경계를 정합니다) 기업이 직접 설립한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그 기업이 동사무소의 동장, 경찰서의 서장도 임명할 수가 있는데요, 그러면 이 경찰은 그 기업의 CEO가 믿는 종교와 다른 종교활동을 하는 것을 공권력으로 탄압해도 되는 걸까요?


이 문제를 다룬 것이 Marsh v. Alabama, 326 U.S. 501 (1946) 사건입니다. 당시 앨러배마 주 치카소우(Chickasaw)라는 타운은 걸프(Gulf Shipbuilding Corporation)라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었고, 보안관의 월급도 Gulf 기업이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Marsh라는 분이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고 거리에서 종교 팜플릿을 나누어주자, 보안관이 사유재산 침입으로 체포를 하였습니다. 


Marsh는 치카소우가 걸프 기업의 소유이기는 하나, 해당 거리는 오랜 역사에 걸쳐 모두가 다니는 공적인 공간이었고 기업의 소유라는 이름으로 도로 위에서 행하는 종교활동을 하는 자를 체포한 것은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Marsh는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승소합니다. 연방대법관 5명은 아무리 기업이 소유한 지역이라 하더라도 공공에게 제공된 이상 자택과 같은 사유재산으로 볼 수는 없으며, 헌법에 의한 제한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다니는 백화점은? 


그렇다면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백화점은 어떨까요? 모든 사람들이 백화점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만큼 백화점도 공적인 공간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 대법원은 꽤 고심을 했습니다. Amalgamated Fod Emps. Union Local 590 v. Logan Valey Plaza, Inc., 391 U.S. 308 (1968) 판결에서 백화점 또한 공적 공간에 해당하므로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가, Lloyd Corp. v. Taner, 407 U.S. 51, 570 (1972) 판결에서 최종적으로 앞의 입장을 번복하여 백화점은 사적인 공간이며 필요에 따라 백화점 측이 사유재산 침입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Public Access Channel은?


미국 방송통신위원회는 케이블 채널 중 일부를 public access channel로 할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뉴욕 시에서는 맨하탄 커뮤니티라는 비영리법인이 '맨하탄 이웃 네트워크(Manhattan Neighborhood Network, MNN)'라는 방송채널을 운영해왔다고 합니다. Manhattan Cmty. Access Corp. v. Halleck, 139 S. Ct. 1921 (2019) 사건은 MNN에 소속된 사람들이 자신이 준비한 프로그램이 제대로 방영되지 않자 이 public access channel은 공동체의 공적 자산임에도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사안입니다. 


결론적으로 연방대법원은 단순히 '의견공유의 장'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는 '공적 공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보수 성향을 띠는 대법관 5인은 MNN은 '민간 비영리법인'에 의해 운영되므로 국가가 소유한 공적 공간이 될 수 없다고 하였고, 진보 성향을 띠는 대법관 4인은 국가 규제에 의해 공정하게 공동체를 위해 운영되도록 할당된 채널인 만큼 넓은 의미의 공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연방 제9항소법원(고등법원 급)은 위의 판결을 인용하면서 유튜브가 기업의 사적인 웹사이트일 뿐, 공적 공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결정하였습니다. Prager University v. YouTube, LLC, No. 18-15712 (9th Cir. Feb. 26, 2020) 사건에서 Prager University는 이름만 '대학'일 뿐, 실제로는 정치캠페인 관련 영상을 올리는 단체였습니다. 이 단체의 정치적 게시물에 유튜브가 제재조치를 가하자 단체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만, 법원은 유튜브의 행위를 국가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인터넷의 공공성을 인정하는 듯한 판결도 최근 등장하고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는 성범죄자 등록시스템에 등록된 사람이 소셜 미디어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었습니다. Packingham v. North Carolina, 137 S. Ct. 1730 (2017) 사건에서 성범죄를 저지르고 형을 받았던 Packingham 씨는 자신에게 주정차 위반 티켓을 발부한 카운티 경찰을 비하하는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익명으로 올린 후 경찰당국에 의해 적발되었는데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죄로 배심원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게 됩니다. 


판결에 불복한 Packingham 씨는 연방대법원까지 가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법원은 Packingham 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모든 대중이 향유하는 의사소통 채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법률을 제정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라는 취지였습니다



대통령의 소셜미디어는? 


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계정정지에 반발했던 사안을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특정인의 댓글만 삭제조치를 했다면 어떨까요? 대통령이 소유한 계정이니 '국가 소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트위터라는 기업의 '민간 소유'로 보아야 할까요? 


아쉽게도 법원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콜롬비아 대학교에 설립된 '나이트 수정헌법 제1조 연구소'에서 실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낙마하면서 대법원도 사건을 각하시켰습니다. 사건명도 트럼프 대통령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 변경이 되었습니다(Biden v. Knight First Amendment Inst. at Columbia Univ., 141 S.Ct. 1220 (2021)). 


다만, 보수 성향의 토마스(Thomas) 대법관은 매우 재미있는 동의의견을 남겼는데요,  그는 트위터가 트럼프 대통령 계정을 영구적으로 삭제한 것을 지적하며, 요즘 디지털 플랫폼은 사람들의 의견 교환에 ‘역사상 유례가 없이 집중화된 권력’((“unprecedented ... concentrated control of so much speech in the hands of a few private parties”)을 행사하고 있는데, 무조건 ‘국가행위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공적인 규제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디까지가 공적 공간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 입장을 다소 길게 살펴보았습니다. 애초에 '도로'와 '광장'이 전통적인 공적 공간으로 인정되었던 이유도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의사소통의 장으로 활용해왔고, 최소한 여기에서는 타인의 개입 없이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민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인터넷의 발달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현재의 표현의 자유 법리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의 소셜 미디어는 사기업이 소유한 백화점과 유사할까요, 아니면 광장과 유사할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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