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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Dec 07. 2021

제목을 바꿔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면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은 표지만 보고서는 사지 않았을 책이다. 존경하는 민음사와 장강명 작가가 만나서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일부러 문제집처럼 만든 듯한데... 정말 문제집 같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제목도 마찬가지. 계급...이라고 하니 '시험은 계급을 양산한다'는 결론이 너무 보이는 듯하고, 단어별로 쉼표로 끊기다보니 호흡도 발음도 이상해진다. '당합계'같이 줄임말을 만들기도 어렵다.


차라리 이런 제목은 어땠을까?


<공모전이 싫어서>

작가님의 베스트셀러인 한국이 싫어서의 네임벨류에 편승.. 하지만 공모전을 완전히 싫어하시진 않는다는 점에선 책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공정하다는 착각>

너무 브로드한 듯하긴 하지만 왠지 사회과학 비문학 책을 찾는 자들에게 베스트셀러 느낌으로 어필... 근데 이미 비슷한 책 제목이 있긴 하다.


<합격피로사회> 아니면 <합격사회>....?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책.... (지극히 개취)


표지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 책이 응당 받아야 했을 주목을 못 받은 느낌이기 때문이다(나만 몰랐을 수도 있지만..). 나는 장 작가님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책, 이게 뭐라고의 표지는 아주 귀엽다) 이를 통해 작가님이 2년이나 몰두해서 취재를 했다는 것, '공정한 채용'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파헤치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표지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해낸 후 읽기 시작했다. 읽고 나선 '이 책 모두가 다 읽어야해!!!!' 하는 수준의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나의 개인적 경험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2012년에 행정고등고시, 당시 명칭은 5급 공채였던 막막한 시험에 합격을 했다. 합격한 후 공무원연수원에서 6개월 교육을 받는 동안 100점의 교육성적을 두고 피튀기는 경쟁이 벌어진다. 영점몇점 차로 부처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정책기획 보고서는 25점으로 배점이 아주 컸다.


2012년 우리에게 주어진 정책기획 문제는 '5급 공채제도 개편방안'이었다. 당시 이 문제를 출제하신 행정안전부 국장님은 행시제도를 폐지하고 싶은데 반대가 심해서 폐지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공채'란 인사담당 부처가 시험으로 수백명을 한 번에 뽑아 각 부처로 보내는 시스템을 말했다. 이를 존치하자는 의견, 부처별로 자율적으로 직위에 맞는 경력을 보아 채용하게 하자는 의견, 프랑스처럼 대학원을 만들자는 의견 등등이 있었다.


조원들끼리 논의를 할 때 나는 공채는 폐지해야 한다고 답을 했다. 이유는 겨우 한 번의 시험으로 너무 많은 것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연수원 입소와 동시에 1억 짜리 마이너스통장을 뚫어주는 것, 결혼정보회사 전화가 빗발치는 것.. 5,7,9급을 나눈 것도, 논술을 잘 푼다고 높은 급수를 주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대안은 마땅치 않았다. '현대판 음서제,' '깜깜이 특혜채용' 같은 말들이 맴돌았다. 완전 블라인드 시험이 아니라면, 누군가는(소수이겠지만) 실력과 무관한 다른 힘을 앞세워 자식을 꽂으려고 할테고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단점이 너무 커서 공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듯했다. 그러다보니 수명이 50세던 시대에 평균 합격연령이 자그마치 39세였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준비하던 과거제도를 그렇게 오래 유지했던 것이리라. 장강명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강화도가 침략을 당했던 해에도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과거시험을 봤다고 한다.


미국에 와서 채용제도를 살펴보니 여기도 신기하긴 하다. 최근 미국 국무부 공무원이 된 친구를 보니 자그마치 1년 반 동안 면접을 보았다고 한다. 9스텝 쯤 있는데 지금 7스텝 쯤 와있다며 허허 웃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인턴십을 했던 기관에서도 변호사 2명을 뽑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온갖 교수님들, 현직 변호사들 추천을 받아 고려를 하는 듯 했다. 우리나라 기준으론 청탁인데, 그 나라 기준에선 refer다.


주말에 어느 집에서 파티를 하던 중 호스트가 옆집 아이에게 대기업 인턴십을 제안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아이가 차가 없어서 출퇴근을 할 수 없다고 하니 그러면 차를 지급할 수 있는지 회사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서 그게 가능한지 물어보니까 호스트는 "뭐 질문할 수는 있잖아."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 바베큐 먹으면서 인턴을 구하는 그 아이가 정말 부러웠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일자리를 구할지 궁금했다.



여하튼 장강명 작가의 통찰은 놀랍다. 공채를 선호하는 사회가 예술에도 공채제도를 만들어서 오직 문학상만이 등단의 길이 되었다는 것. 그 유명한 임경선 작가는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출신이 아니라서 아직도 '미등단 작가'라고 한다. 어느 작가는 소설을 이미 몇 편이나 냈는데도 추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비로소 등단"했던 것"으로 추인되었다.


그는 문학상을 만들고 폐지시켰던 출판사 대표(원로)들을 만나고, 심사위원들을, 작가를, 작가지망생을 만난다. 영화판이 궁금하면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을, 그런 감독을 뽑는 영화사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다던데 사실이냐'고 묻는다. 500여 명의 작가지망생을 대상으로 통계조사도 핬다. 읽고나니 2년만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취재했는지 신기했고, 박사학위 논문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오히려 넘어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문학계에서 훌륭한 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문단의 hierarchy를 복제한 채 큰 상금을 거는 공모전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궁극적으로 다양한 작가를 선호하는 독자가 있어야 하므로 '독자들의 문예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서평을 많이 쓰고 의견을 나눌 때 소수의 취향에 맞는 작가들도 자신 있게 작품을 집필할 수가 있게 된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중 스포츠 장학생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장학금을 받고 자신의 성적보다 높은 대학에 들어와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유유히 보잉 회사에 취직해서 엔지니어로 평생을 살았다. 스포츠 인재가 올림픽에 집중하면서 대학 학업을 충실히 한 것도, 올림픽 후 코치 등 스포츠판에 전전하지 않고 다른 전문성을 살리는 것도 생경한 이야기였다. 내가 미국 연방정부기관에서 만난 여자 변호사도 하버드 수영 올림픽 후보선수 출신이었고, 로스쿨에서 만난 어느 우수한 학생도 우리학교 농구선수 출신이었다. (그리고 이는 자랑거리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가 가능한고 상상해보니 가장 큰 요인은 다양한 스포츠 경기의 지역팀을 응원하고 티켓을 사는 지역사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지역사회의 관객들만으로도 각 대학은 무수한 스포츠팀을 운영할 유인이 있다. 즉 지역주민의 스포츠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멀고도 힘든 이야기지만 아주 재미있는 구상이다.


작가는 더 나아가 아주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이 유효할지를 검토하기에 이른다. 좋은 질문-좋은 분석-좋은 문장-성실한 대안제시까지 수행한 엄청난 책. 기자 출신에 공모전 수상을 4 번이나 해본 이이기에, 회식 자리에서도 조용히 스톱워치를 키며 자기자신을 감독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치밀한 기획력, 행동력, 통찰력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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