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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Nov 12. 2022

카페에 멍하니 앉아 글을 쓰는 일

유학을 오기 전, 가장 꿈꿨던 장면은 카페에 멍하니 앉아 글을 쓰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가득한 공간에서 혼자 한국인으로 앉아 있다면, 그렇게 나 혼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사의 전화도 오지 않고 화장을 안하고 추저분한 모습으로 있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렇게 소설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논문을 쓰든. 뭔가를 쓰고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내 머릿 속의 그 공간에는 끝이 둥근 테이블과 초록색 식물, 맛있는 커피가 있었다.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멍하니 넋놓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는 온 미간을 찡그리고 잔뜩 웅크린 자세가 된다. 영어든 한글이든, 내 생각을 오롯이 글자로 써 내려가는 일은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한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면 그 좌절감이, 글이 잘 써지는 날이면 그에 소요되는 정신적 에너지가 얼굴에 아로 새겨진다. 새가 지저귀는 오후, stress-free한 얼굴로 우아하게 글 쓰는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에 더해 카페의 소음이 신경 쓰이고, 카페의 테이블은 너무 높거나 낮거다. 작은 카페라면, 노트북을 꺼내는 자체가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와이파이가 불안정하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 카페에선 노트북을 자리에 두고 수가 없다. 실제로 노트북을 훔쳐가는 장면을 목격한 적은 없지만, 노트북을 자리에 놓고가지 않는 것은 뭐랄까. 아주 기본적인 자기방어이다. 노트북을 잃어버려서 경찰서에 가더라도, "세상에, 노트북을 자리에 그냥 두고 갔다고요? 그러고도 안 잃어버리길 바랬다면 참 순진(무책임)하시네요."라고 말할 것 같은. 


가끔 정말 노트북을 두고 그냥 화장실에 가는 사람도 있고, 옆 사람에게 "잠깐 제 노트북 좀 봐 주실래요?"라고 말하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그냥 바리바리 싸서 화장실에 간다. 옆 사람에게 내 의무를 전가하는 것도 왠지 미안하기 때문. 나는 테이블 밑에 머리를 욱여 넣고 콘센트를 뺀 다음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 넣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이내 지겨워졌다. 그럴 때는 배우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주말에 같이 나와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 내 노트북을 봐 줄 수 있겠구나. 


결국 카페에선 커피 한 잔을 하면서 논문이나 한 두 편 읽고, 마음대로 노트북을 두고 다닐 수 있는 도서관이나 연구실로 향하게 된다 (도서관도 100% 안전하지는 않다). 



아주 먼 옛날, 갑자기 동생의 연락을 받고 특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여동생 회사에서 스위트룸을 어떤 심사위원회의 심사장으로 대여하였는데, 심사위원 전원이 집에 가서 자겠다고 하는 바람에 방이 비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동생이 혼자 그 방을 쓰게 되었고, 내가 밤 11시쯤 퇴근을 해서 과천에서 종로까지 가니 12시가 되었다. 어차피 다음 날 출근해야 해서 스위트룸을 즐길 새도 별로 없이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 여섯 시 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인 조식을 누리러 스위트룸 전용 라운지에 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위트룸 전용 라운지는 6시부터, 전체 객실 대상 조식 레스토랑은 7시부터 열었다. 전용 라운지는 30층 부근에 있었고, 메뉴는 간소했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음식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새벽의 하늘과 빌딩 숲이 근사했다. 그리고 30명 정도 수용할 만한 라운지에는 우리와 어느 외국인 한 명 뿐이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아저씨는 머리는 희끗했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폴로 티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분은 우리가 들어서서 음식을 덜고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나갈 때까지 계속 노트북 자판을 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몇 일이나 여기 머무는 걸까? 꽤 오래된 것 같지?" 

내가 물었더니 동생은 "그러게. 음식에도 관심이 없으신 걸보니 우리 같이 1박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애."라고 했다. 


그 분은 그 새벽에 무슨 글을 쓰고 있었을까. 


나는 영국 사람 같은 면모에서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아닐까 추정했지만 이코노미스트에서 이런 룸을 예약해줄 것 같지 않았다. 유명한 교수일까? 기업의 임원일까? 임원이 저렇게 진지하게 글을 몇 시간 동안 쓸 일이 있을까? 


결국 그 정체를 알아 내지는 못했지만, 아침 일찍 글을 쓰는 데에 몰두하던 그 모습은 내 머릿 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언젠간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글을 쓰는 사람. 아침부터 누군가에게 꼭 닿아야 하는 글을 쓰는 사람. 그만큼 가치 있는 글을 쓰는 사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사람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거의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이는 일. 날카로운 비판과 모멸감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나를 연약한 상태로 내어 놓는 일. 누군가 귀한 시간을 내서 내 글을 읽어 준다면 그 사람의 시간에 보답할 수 있도록, 내가 온 얼굴을 찡그리고 온 몸을 긁으며 괴로워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지난 3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카페에서 편하게 앉아 글 쓰는 일은 내게 거의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글 쓰는 일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후, 후, 하, 호흡을 하며 자세가 흐트러져 다치지 않도록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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