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넘어가던 때였다. 당시 어른들은 IQ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의 잠재력을 어린 나이에 평가해보고 싶은 마음은 거둘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지능 또는 재능 검사를 당했(?)다. 선생님들은 평가점수를 잘 알려주지 않았다. 부모님용으로 발급된 지능검사표에는 모호하게 '범위'만 나와 있었고, 이학계열이나 예술계열 등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까. 갑자기 IQ를 정확히 찍어서 검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갑작스런 지능 성적표에 아이들은 술렁였다. 90점을 받아든 친구는 마치 대학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내 IQ는 놀랍게도 표본 상위 1%였다. 친구들은 '네 인생은 앞으로 걱정 없을 것'이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지능 검사의 폐해였다.
그 때 내가 높은 IQ를 기록했던 건 사실 '볼펜 찍기' 덕분이었다. 수십 개의 네모칸 안에 볼펜으로 점 2개를 찍는 과제였는데, 미친듯이 점을 찍는 게 재미 있었다. 창의력, 이해력, 사고력, 언어구사력 등.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측정했나 싶은, 여러가지 능력치 중 나는 '순발력'에서 200점 만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낮은 점수는 '창의력.' 110점 정도 였다. 원래도 나의 창의력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터라, '그럼 그렇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 난 백일장에 나갈 때도, 축제를 기획할 때도, 대학에서 팀플을 할 때도 '난 원래 창의력이 좀 부족해서...'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다니게 되었다.
가장 창의적인 사람을 꼽아보라면.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난 내 남동생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만 4살일 때 태어난 남동생은 좀처럼 말을 하지 않고 방긋방긋 웃기만 했었다. 그 애는 나와 여동생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어도 꼭 옆에서 같이 놀려고 했었다. 남동생이 기저귀를 차고 기어오던 그 날 오후, 우리는 좁은 방 안에서 '코코블럭'을 하고 있었다. 레고보다 5배 쯤 큰 유아용 블럭이다.
이런 모양.
남동생은 우리 옆에 기어다니며 혼자 코코블럭을 입에 넣어보기도 하고 맞추어보기도 하다가, 갑자기 우리를 툭툭 치더니 자기가 만든 것을 보여주었다. 코코블럭 2개를 연결하고 그 사이에 쌀알 2개를 넣은 것이다. 남동생이 블럭을 흔드니 짤짤이 소리가 났다. 요즘으로 치면 ASMR 같은, 잔잔한 소리. 급조된 짤짤이를 흔들며 남동생은 꺄르르 웃었다.
"너 이런 생각을 도대체 어떻게 했어? 쌀은 어디서 났어???"
그 때 그 경탄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악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세상의 악기는 이런 식으로 발명이 되어 온 걸까? 엄마에게 달려가서 '너무 너무 너무 신기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기특하다'는 정도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한편 나는 인류의 신비를 두 눈으로 목격한 기분이었다. 내 남동생은 천재가 틀림 없었다.
그 후 남동생은 평범하게 자랐다. 오히려 언어가 너무 늦어서 자폐나 지적 장애가 있나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남동생의 시대에는 비과학적인 IQ검사가 없던 것이 다행이다). 남들보다 언어가 늦어도, 어린 남동생은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 만화 비슷한 것을 그렸다. 엄마가 잔뜩 쌓아준 이면지에 에반게리온 비슷한 인간로봇을 수십 개 그리면서 하루 종일 입으로 이야기를 되뇌였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그 아이만의 이야기였다.
난 그런 남동생의 창작열에 감탄하곤 했다. 어떻게 몇 시간 동안 제 자리에 앉아 혼자 로봇을 그리고 있는 걸까. 끝없이 저런 이야기가 어디에서 흘러 나올까.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장 재밌어서, TV도 안보고 혼자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남동생은 이제 커피를 내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도 끝없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웹소설을 쓰는데, 우리에게도 계정을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난 남동생이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
여동생의 저평가된 문학적 자질.
몇 년 전, 여동생과 나의 일기장을 넘겨보다 여동생의 시를 읽고 감탄을 했다.
사진을 잃어버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제목: 형섭이 오늘 형섭이가 온다. 몇 시에 오는지 궁금하고, 무슨 옷을 입고 오는지도 궁금하다. 왜 이렇게 궁금한지 하도 궁금해하다가 형섭이가 보고 싶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기를 쓴 여동생은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엄마 친구 아들인 형섭이와 그렇게 다정한 관계는 아니었다. 형섭이는 여자아이들을 시덥잖게 놀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 여동생은 형섭이가 언제 올지 무슨 옷을 입고 올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던 것이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글로 구현한 여동생이 귀엽고 대단해서 웃음이 나왔다.
내 여동생의 일기는 천진난만하다.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을 예쁘게 담아 두었다. 언니에 대한 미움이나 ("예진이 언니는 우리 언니 같지 않게 너무 착하다." ㅎㅎ) 엄마에 대한 서운함도. 눈과 손이 아주 가깝다고 해야 할까. 여동생의 일기장은 최소한 내 기준에선 바로 출판을 해도 될만큼, 여동생만의 색깔이 가득한 글로 꽉꽉 차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그 자질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5학년에 이르기까지 여동생 일기장에 선생님의 칭찬은 많지 않다. 도장만 찍혀 있거나 맞춤법이나 짧은 길이를 지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내 일기장에 "시인이 되어도 손색이 없겠어요." "정말 잘했어요!" 같은 칭찬이 그득그득 써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이 내 동생에게 관심이 없던 이유는 아마도 성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높은 IQ점수를 받은 후 더 자신감을 갖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 여동생은 남자아이들과 칼싸움을 하고 뛰어다니던 스타일이었다. 그 땐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 미술도 체육도 성적을 잘 주던 시절이었다.
그 때 내가 여동생 일기장을 훔쳐볼 수 있었더라면. 분명히 이 자질을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아이였기에, 그런 눈이 없었을까? 만약 내가 알아보았더라면, 나 대신 여동생이 백일장에 나가서 상을 받지 않았을까? (난 매번 학교 대표로 뽑혔지만 한번도 대형 대회에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시간이 한참 지나, 결과적으론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게 되어 훌륭한 직장인이 된 여동생에게 '너 문학적 자질이 엄청났다는 걸 알고 있었어?'라고 물어보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시큰둥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