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스스로 '창의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컸다. 공부를 잘하고 욕심이 많았던 죄로, 온갖 백일장과 과학상상화, 과학상자 대회 등에 나갔지만 교내 1등은 해도, 지역 1등은 절대로 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네 그림은 재미가 없어!"
미술을 전공하기까지 한 우리 엄마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내가 미술반 친구들의 그림을 따라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미술 선생님에게 별도로 그림을 배우던 아이들이 나보다 미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사례가 이어졌고, 나는 무심코 그 아이들의 수채화 점묘법을 따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때 엄마는 망가진(?) 내 그림을 보며 너무 속상해했었다. 네 색깔이 다 사라졌다고. 1등을 지향하는 데에 익숙했던 난, 선생님이 1등이라고 치켜세운 스타일을 따라했을 뿐이었다. 되돌리려 해도 어떻게 되돌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로빙화>라는 영화를 보며, 우리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각했다.
그 때 붓을 더 이상 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원래 내 그림도 맘에 들지 않았는데, 바뀐 내 그림도 어차피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엄마가 원래대로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갈 수 없으니. 굳이 고생하며 그림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내 안에 한 줌 정도 있던 창의력이 모래처럼 날아가버린 기분이었다. 그래,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
굳이 나의 강점을 꼽자면.
한편, 창의성을 타고난 내 동생들과 비교했을 때 나의 강점은 '빠르게 복제하는 것'과 '독자를 의식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난 모든 과목을 고만고만하게 잘했다. 수학적 머리, 빠른 달리기, 지도를 보는 능력, 납땜이나 바느질을 하는 손재주 등. 어느 것 하나 뛰어난 것이 없었지만, 복제하는 것만큼은 잘했다. 그림도 남의 것을 잘 따라그렸고, 무슨 기술이나 문제풀이나 친구들이 본을 보여주면 금방 습득했다. 심지어 아랫집 언니의 달리기 자세까지 복제를 해서 계주에 나가곤 했었다. '스펀지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출제자의 의도를 읽는 데에 능숙했다. 어려서도 어른들이 내 앞에 앉으면 그 사람의 관점에서 똑바로 사람이 서 있도록 그림을 거꾸려 그려주었다고 한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시험 문제에서 출제자의 의도가 보였다. 아, 이 문제는 여기서 실수하라고 냈구나? 맞아, 선생님이 강조했었지.
이런 능력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에 유용했다. 특히 행시 1차시험 PSAT을 볼 때 덕을 많이 봤다. 소매치기 말고는 써먹을 데가 없다고 생각했던 '천재적 순발력'은 PSAT에서 톡톡히 써먹었다. 그 와중에도 '난 남의 것을 잘 베끼지만 내 것을 만들지는 못해. 내 능력은 거기까지지.'라는 생각을 항상 했던 것 같다.
내 일기장은 내 여동생의 일기장보다 훨씬 재미가 없다. 독자인 '선생님'을 생각하고 썼기 때문이다. 가급적 선생님이 칭찬하고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쓴 기색이 역력하다. 엄마에게 잘했다거나, 친구들에게 잘해주었다거나. 이런 '목적성' 글은 당연히 문학적인 재미가 떨어진다.
하지만 이따금 재밌는 일기도 있다.
바로 독자인 선생님에게 화가 난 경우다. 나는 대게 선생님을 기쁘게 하려는 아이였지만, 가끔 아주 깊은 빡침이 올라올 땐 선생님에게 직빵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아래 일기는 4학년 때 방학숙제를 하던 중에 EBS 방송과 <방학 생활>의 진도나 페이지가 맞지 않아서 분노해서 쓴 듯하다. 담임 선생님의 잘못인지, EBS의 잘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의 분노가 느껴져서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