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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May 25. 2023

#1. 나에게는 며느라기가 없을 줄 알았어


며느라기, 그게 뭐지?

한 때 인기가 있던 '며느라기'라는 인스타그램 웹툰이 있었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 웹툰 


이 웹툰은 정말 잘 만든 작품이었다. 인스타그램의 10컷을 이용한 구성도 좋았고, 누군가는 작화가 허술하다고 했지만 미대출신인 나는 대충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악인이 없다는 것. 며느리도 남편도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나름대로 따뜻한 사람들이고 최선을 다하는데, 며느리는 날이 갈 수록 불행해진다. 인스타그램 댓글은 시댁에 울분을 품은 여인네들의 성토의 장이 되어 남편과 시댁 가족들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만, 나는 작가가 참 따뜻한 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 며느리가 불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누구도 며느리의 불행을 의도하지는 않았다는 것.



나는 며느라기를 안 겪을 줄 알았다. 


웹툰에 따르면 '며느라기'란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라고 한다. 왜 시댁에 예쁨을 받고 싶어해?시댁은 나를 미워할텐데? 시부모님에게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가 없던 나는, '며느라기'라는 명명이 왜 생겼는지 의아했다. 


우리 어머니는 시어머니로부터 오랜 기간 내 눈 앞에서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겪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어느 것도 택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아버지의 모습. 아들과 손자를 유독 사랑했던 나의 할머니. 그 분도 언젠가는 따뜻하고 빛나던 순간이 있으셨겠지만, 내 눈에 비친 70대 노인은 아집과 미움으로 가득찬, 아이보다 못한 어른이었다. 


반면, 우리 어머니는 할머니의 모진 고문을 온 몸으로 견뎌내고 유약한 아버지를 감쌌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할머니도 우리의 삶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어릴 때 궁금했다. 


우리 엄마는 저렇게 평생 견딜 생각인걸까? 


엄마는 할머니가 사라질 때까지 할머니의 욕을 한 적도 없었고. 내가 손녀를 미워하는 할머니를 질색팔색 할 때, 오히려 할머니를 감싸는 이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 생전, 아버지가 보배처럼 모시는 성인이 되었다.(지금 돌이켜보면 성인대우 안 받고, 시집살이 안하는 게 백배천배 낫다) 


그렇게 자애롭고 합리적인 어머니도 피할 수 없는 시집살이, 나라고 피할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내가 '며느라기'를 겪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라고 별 수 있겠어. 

아마도 시어머니는 날 질투하겠지. 

시아버지는 고집불통의 아이 같은 사람이겠지. 

남편은 시댁과 나 사이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하겠지.

나는 그들에게 이쁨 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아. 

나도 그들에게 기대하지 않고, 그들도 내게 기대하지 않는. 

그런 담백한 관계가 되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불현듯 미국 유학생활 중 코로나의 외로움에 시달리다 결혼을 했고 

내게도 시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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