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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un 01. 2023

#12. 며느리 앞에서만 온순해진다는 아버님

 

이번 2주 여행의 클라이막스는 라스베가스와 3대 캐년이었다. 


미국 LA까지 전기를 공급해 캘리포니아 황금의 시대를 열었다는 후버 댐의 웅장함을 처음으로 보고, 유타, 네바다, 아리조나 주에 걸쳐 있는 그랜드 캐년,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 캐년을 경험하였다. 나는 남편 회사의 계약서를 검토해주느라 브라이스 캐년은 두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엽서에서만 보던 그랜드 캐년과 게임 배경처럼 아기자기한 자이언 캐년을 보니 신기하고 좋았다. 


시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브라이스 캐년. 아버님이 찍으신 사진. 


남편이 찍은 브라이스캐년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는 백인들에 의해 관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찌는 듯한 광활한 평야에는 원주민(indigenous people)들이 드림 캐쳐나 모자를 만들어 팔면서 살고 있었다. 백인들에게 땅을 뺏긴 원주민들의 삶. 시애틀에서 책으로만 보다가, 실제 금싸라기는 백인이 가져가고 자연이 행하는 풍파는 원주민의 후손이 온 몸으로 견디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말발굽을 닮았다는 Horse shoe


이렇게 자연 중심으로 관광 일정을 짠 이유는, 아버님이 자연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도시 여자 스타일이시다. 나보다 훨씬 패션 센스가 좋으시고, 운동을 열심히 하셔서인지 60대에도 20대 같은 몸매를 유지하고 계신다. 여행을 갈 때 어머님은 아울렛 쇼핑몰을 둘러보고 커피 한 잔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시는데, 아버님은 쇼핑을 지루해하신다. 커피도 전혀 드시지 않는다. 음료도. "쓸 데 없는 데 돈쓰지마!!" 갑작스레 역정을 내셔서 여행 분위기를 망치기가 일쑤다. 


남편은 내심 어머님 홀로 여행 오시기를 바랐었다. 아버님의 역정을 예측할 수가 없고, 한 번 역정을 내시면 남편과 어머님의 기분이 가라 앉기 때문에. 아버님이 동행하시면, 남편은 레스토랑도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코로나 이후 한층 경계가 강화된 국경을 홀로 건너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련님+어머님의 조합이 가장 좋지 않았으려나? 아니면 도련님+아버님+어머님? 도련님이 새 직장에서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아버님과 어머님이 함께 오시게 되었다. 


사실 나는 라스베가스 여행에 동행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남편은 2주 여행 중 1주 간은 내게 '휴가'를 줄 것이라 공언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과 시부모님만 가시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캐년에 큰 관심이 없었고 라스베가스에는 더더욱 무관심했다. 하지만 시부모님이 여러 차례 남편에게 부탁을 하셨다고 한다. 좋은 구경을 당신들만 하시기에는 내게 너무 미안하시다는 것.... 난 안 미안하셔도 된다고 여러 차례 답을 했지만, 결국 남편이 "나도 자기랑 너무 가고 싶어. 솔직히 혼자... 아빠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캐년은 꼭 봐야돼! 정말 너무 좋아!"라고 말을 했다. 1달 동안 이어가던 나의 저항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남편의 전략은, 아버님을 충분히 기쁘게 해드리되 어머님이 좋아하실 만한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끼워넣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 전략은 완전히 통했다! 아버님은 산맥에 발이 닿는 순간,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경치를 구경하고 나무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바쁘셨다. 어린 아이가 모래사장에서 신나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버님이 좋아하는 며느리가 같이 다니니. 아버님은 자연 구경에 흠뻑 빠져 있으시다가, 이야기가 하고 싶으실 때면 나를 찾으셨다. 아버님의 가난하던 어린 시절, 아버님이 형제들을 건사하던 청년과 장년 시절,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를 자퇴한다고 했을 때 가슴이 무너지셨던 이야기, 일본에서 파친코를 하셨던 경험, 일본의 파친코가 조총련에 의해 운영되고 북한 정부에 많을 때는 월 100억 엔까지 송금을 했다는 이야기 등등. 


아버님의 해맑은 기쁨, 숨겨지지 않던 차오르는 기쁨을 보면서 남편은 안도감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아빠는, 지금 세상 모든 시아버지 중에서,
아니 세상 모든 사람 중에서 행복한 순으로 0.1% 안에 들거야. 
아빠는 사실 그럴 자격이 없는데. 



그치만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님이 불행해지면 거의 확실히 남편과 어머님도 불행해진다. 그러니 아버님의 행복을 바랄 수밖에 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버님께서 유난히 긍정적이고 행복한 태도를 유지하시면서, 핀잔을 주거나 역정을 내는 태도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우리가 도저히 일정이 안된다고 말씀드리면, 본인이 바라는 것(예를 들면 후버 댐 아래의 발전소 방문, 2시간짜리 트레일 하이킹 등)도 화내지 않고 포기하셨다. 남편은 아버님의 온순한(?) 태도에 놀랐다. 아빠랑 여행다니는 일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내가 부재할 때, 작은 사건이 몇 번 있었다. 아버님의 '본색'이 드러났던 순간들이었다고 한다. 

한 번은, 어머님이 등산화 쇼핑을 하던 날이었다. Clarks에서 2켤레 100불, Columbia에서 1켤레 70불짜리 중에서 어머님이 고민을 하고 계셨다. Clarks에서 사게 되면 등산화+가벼운 신발을 동시에 살 수 있었고, 어머님이 흰색을 선호하셨기에 남편은 Clarks를 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어머님은 아마도 둘 다 완전히 마음에 드시는 것은 아니었는지, 계속 고민을 하셨다고. 그런데 밖에서 시간을 혼자 보내고 계시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매장에 들어오셔서, "콜럼비아 사!! 뭐 하러 두 켤레를 사!! 콜럼비아가 낫지!!"라고 소리를 빽 지르셨단다. 


*다음은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재구성한 대화 

남편: 엄마, 원하는 거 사. 아빠 말 듣지 말고. 뭘 원해? 

어머님: 아빠가 저렇게 말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야. 콜럼비아가 아무래도 전통 있고 하니까 더 좋겠지.. 

남편: 그래? 그러면 왜 그렇게 고민했어? 엄마 아들 돈 잘 벌어. 엄마 신발 사는 거니까 엄마 원하는 대로 해. 

어머님: 콜럼비아 사! 

남편: 돈 때문이야? 아니면 엄마가 좋아서야? 아빠 말 때문이야? 

어머님: 됐고, 콜럼비아 사. 

남편: 엄마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 둘 다 마음에 안들면 다른 곳에 가서 보면 돼. 

어머님: 아 됐고, 그냥 사. 


나는 어머님이 새 등산화를 신고 오신 것을 보고 "어머! 너무 예뻐요 어머님!"이라고 했고, 어머님과 남편은 알듯 모를듯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은 본인 때문에 두 사람이 얼마나 슬펐는지 알까..? 


그 다음 사건은 내가 한창 에어비앤비에서 남편 회사의 계약서에 있는 법률용어들과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벌어졌다. 


어머님은 7년 전에 브라이스캐년에 오신 적이 있다. 그 때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밀크쉐이크'를 드셨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 내내 남편과 어머님의 즐거운 미스터리 중 하나는, "그 때 그 쉐이크집, 아직도 있을까?" 였다. 어머님은 "멀면 안가도 된다 얘. 우리 가게 이름도 모르잖아."라고 하시고, 남편은 "엄마, 엄마 아들 길 잘 찾는 거 알지? 나 어딘지 대충 알 거 같애. 찾아갈 수 있어."라고 하고, 어머님은 "거기 밀크 쉐이크 말고... 둘째 말로는 햄버거도 맛있었댔어. 햄버거 먹으러 가자!"라고 덧붙이셨다. 


그래. 어머님은 그런 분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쉐이크 만을 먹으러 온 가족을 끌고 이름도 모르는 가게가 거기 있는지 없는지 찾아가기 미안해하시는 분. 그래서 햄버거도 맛있으니, 햄버거를 좋아하는 나나 남편이나 아버님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해야 덜 미안해지시는 분이다. 


아버님은 역시나 브라이스캐년에서 신나서 날아다니시고, 모자는 아버님을 혼자 보내놓고는 행복하게 브라이스 캐년을 거닐었단다. 그리고 그 쉐이크집을 남편이 찾아냈다! 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 어머님은 너무나 행복해하셨다. 세 사람은 쉐이크 여러 개와 햄버거를 먹고 싶었지만, 혼자 일하고 있는 나를 걱정하여 햄버거 1개를 셋이 나눠 먹고 저녁 거리를 사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님과 남편은 마법 같이 돌아와 준 쉐이크집에 열광하며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구경했다. 남편은 어머님께 기념품 티셔츠(18불)를 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XXL만 남아 있었다고.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이 그렇게나 좋아했던 이 가게를 기억하시라는 마음에, 어떤 디자인이든 하나 골라보라고 했단다. 어머님은 무난한 회색을 고르셨다. 역시나 음식을 먹은 후 일찌감치 가게 밖에 나가 계시던 아버님. 어머님께서 아들이 사준 티셔츠를 자랑하자, "티셔츠가 왜 이렇게 커!! 입지도 못하잖아!! 환불해!!!!!"라고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님의 명에 따라 환불하려고 했지만, 남편은 '내가 사준 티를 왜 아빠 마음대로 환불하라 하느냐'며 같이 화를 냈단다. 그래서 어머님은 그 티셔츠를 겸연쩍게 숙소까지 들고 와서 내게도 보여주셨다. 아버님은 황당하게도 그 티를 시부모님께 숙소를 빌려준 내 미국 친구(70대 여성, 라지 사이즈를 입는다)에게 주겠다는 아이디어를 내셨다. 그리고 본인이 너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찮아도 집주인에게 신세져서 고맙다며 선물이 하고 싶었고, 아들이 쓸데 없이 큰 티를 사 왔으니 그걸로 선물을 대신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 남편은 너무너무너무 싫어했다. 엄마에게 추억하라고 준 선물을 왜 본인 맘대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라고 명령하냐는 것이다. 엄마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래서 그 쉐이크집은 어머님과 남편에게 다소 슬픈 기억으로 남고 말았다. 아버님은 여행 마지막 날까지 기어이 그 티를 선물로 주려고 하셨고, 내가 아버님께 "여성이 XXL티셔츠를 받으면 뚱뚱하다는 이야기 같아서 기분이 안좋을 수도 있다."라고 하니 뜻을 거두셨다. 




이상하게도 아버님은 내가 있을 때는 그렇게 소리를 빽! 지르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아버님이 이상한 말씀을 하셔도, 어느 정도는 내가 개그로 승화시킬 수가 있었다. 내가 없을 땐, 1. 아버님의 빽! - 2. 어머님과 남편의 시무룩 - 3. 두 사람의 소심한 불평의 사이클이 계속 되는데, 내가 있을 땐, 1. 아버님의 소심한 불평 - 2. 나의 개그 - 3. 셋이 하하하 이런 다소 긍정적인 사이클이 형성되니 어머님도 남편도 나를 '아버님 제어장치'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심 어머님과 남편은 모두 나에게, 또는 며느리만 편애하는 아버님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은 때때로 나에 대한 화살로 돌아오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아버님에게는 말을 못하지만, 나에게는 속 마음을 편히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한 몸 불살라 가족의 평화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불평어린 시선이 날아올 때마다 답답하고 괴로웠다.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아버님 비위를 맞추라고? 맞추지 말라고? 





* 덧: 그 마법의 밀크쉐이크를 먹어보니, 어머님이 왜 좋아하시는지 알것 같았다. 파인애플을 갈아서 만든 독특한 우유맛. 난 다 녹은 걸 먹어서 맛을 완전히 느끼지 못했지만, 정말 특별하긴 했다. 언제 또 올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렴! 

 


끝내주게 아름답긴 했다. 오길 잘 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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