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결혼식 전후에 시부모님과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은 후, 2023년 시부모님께서 2주 간 미국을 방문하셨다. 남편에게 2주는 조금 길다고, 1주일은 우리가 모시고 다니고, 나머지 1주일은 알래스카든 어디든 패키지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남편은 막바지 개발 기간으로 일정이 빠듯했고, 난 쓸데 없이 제일 바쁘다는 대학원생으로서 수업도 듣고 페이퍼도 써야 했다.
남편은 고려하는 듯 하더니, 패키지 여행은 이내 제외를 하였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자세히 듣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님께서 꺼려하셨다고 한다. '아버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믿을 수 없다? 그게 무슨 뜻일까? 패키지 여행이 무산된 후 남편은 내게 미안했던지, 2주 중 1주는 무조건 내게 완전한 자유시간을 주겠노라 확언을 했다.
패키지 여행 다음의 난관은, 부모님의 숙소. 우리가 부산에 방문했을 때 기꺼이 안방을 내어주셨던 부모님들은 우리 집에 머물고 싶어하셨다. 우리 집은 손바닥만한 원베드룸(거실+방 1개)이다. 거실에는 남편의 거대한 책상 2개와 식탁이 있고, 안방에는 내 책상과 침대가 있다. 정말 발디딜 틈 없이 짐이 가득차 있기에, 손님이 잠을 자려면 책상 의자 바퀴나 식탁 의자 다리를 눈 앞에 두고 자야 하는 구조다. 화장실도 1개 뿐이다. 4명이 매일 샤워를 하려면...
남편은 당연히 부모님을 호텔에 모시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버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무슨 소리야!!! 아무리 좁아도 그냥 자면 되지!!! 왜 허튼 데 돈을 쓴다는 거야!!" 어머님은 우리의 편을 들어주려고 애를 쓰셨다. 남편은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자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불안했다.
시부모님은 차도 렌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아버님께서는 한국에서 꽤 용감한 운전자이신데, 미국에서 운전하시는 것을 꺼려하신다고 했다. 우리 차를 몰고 다니는 건 어떠시겠냐고 해도, 남편은 '아마 아빠 혼자 운전하려고는 안할거야'라고 답했다.
절망적이었다. 우리 집 근처의 에어비앤비와 호텔을 찾아보니, 벨뷰 다운타운의 웨스틴 호텔이 아니고서는 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비교적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벨뷰이지만, 한국처럼 촘촘하게 시내버스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이 동네에는 택시가 거의 없다. 모두 우버나 리프트를 타는데, 우리 시부모님은 우버를 사용할 줄 모르신다. 한국에서 KTX 기차표를 끊는 것도 우리 도련님의 몫이니, 시부모님에게 우버 사용법을 배우라는 건 과도한 기대일 것이다. 웨스틴 호텔의 숙박비는 남편도 시부모님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선택지는, 애매한 지역에 위치한 호텔에 머물게 하시고 우리가 매일 아침 모시러 가서 그 날 일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호텔방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실 시부모님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 때의 답답함을 지금 와서 토로하면, 남편은 "난 우리 부모님 우리 집에 모실 생각 추호도 없었어! 그건 아예 선택지가 아니었어!"라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나는 실존적 불안을 안고 있었다. 아버님이 끝까지 호텔방에 머물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신다면. 우리 돈인데도, '돈이 아깝다'며 화를 내신다면. 우리가 고른 숙박업체가 시내에서 멀다거나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역정을 내신다면. 과연 어머님과 남편이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 머릿 속에선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우리 엄마 아빠, 우리 집에서 그냥 주무시라고 하면 안될까? 우리 엄마는 우리 집안일 해주는 게 기쁨일거야. 자기는 그냥 학교 가버려. 아빠는 바닥에서 자는 걸 좋아해서 호텔보다 여기가 편할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끝없이 자동재생되고 있었다.
아버님이 우리 집에 계시고 싶어 했던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우리를 최대한 많이 보고 싶은 다정한 마음과, 자녀의 서포트 없이 두 분이서는 여행을 해내기 어렵다는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로 시부모님을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잘한 결정이다... 결국 여러 차례 우리 집에 방문하시고 주무시고 가시기도 했는데.... 올 때마다 아버님은 더럽다며 핀잔을 주셨다) 아버님이 만족할 만한 대안을 드릴 자신도 없었다.
그러다가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나의 친구, 70대 할머님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신단 소문을 입수하였다! 혹시 house sitter가 필요하지 않은지 물어보았다. 우리 시부모님이 2주간 여행을 오실 예정인데, 너희 집에 묵으면서 집을 깨끗하게 관리해주면 어떻겠냐고. 친구는 대환영이었다. "어머 너무 잘됐다, 그렇찮아도 우리 집에 사람이 있어야 도둑이 안들어서. House sitters를 구하고 싶었어! 주변 이웃들이 가끔씩 와서 봐준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누가 머물게 되면 더 좋지. 게다가 너희 시부모님이라면 분명히 깔끔하신 분들일테니."
이 친구의 집은 오래된 단독주택이어서 한국인들이 살기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방이 두 칸이고 3개의 침대가 있다. 예쁜 뒤뜰과 정원도 있다. 결정적으로 시애틀의 그린레이크(Green Lake)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도보 5분 거리에 마트와 스타벅스, 카페, 레스토랑 등이 즐비해있다. 그리고 그린레이크는 시애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책코스 중 하나로. 자연이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고 5km 산책코스에 경사가 없기 때문에, 허리나 무릎이 안좋으신 어르신이 걸어다니시기 딱 좋았다! 우리가 사는 벨뷰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긴 하지만, 차 없는 시부모님이 머무시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아버님께서는 '무료'라는 이야기에 바로 승낙을 하셨다. 어머님께서도 오래된 것은 문제가 아니라며, 그렇게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 감사하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집을 빌려주는 내 친구가 한국에 방문할 때 부산에 놀러올 수 있으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전하니 내 친구는 흔쾌히 오케이! 그렇게 70대 미국 여성과 60대 한국인 시부모님의 3박 4일의 동행이 성사되었다. 아버님이 배 타실 때 배워두웠던 영어로, 어머님은 파파고 번역기에 기대어 여차저차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시부모님은 내 친구에게 좋은 음식을 많이 사주신 후 편안한 마음으로 이 집에서 머무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린레이크에 잘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생태에 아버님은 탄성을 금치 못하셨다. 이 집에 계시던 2주 동안 한 4번 정도는 산책을 나가셨던 것 같은데, 매번 새로운 꽃과 새를 발견하시며 행복해하셨다. 두 분이 걸어서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사드시기도 하고, 유기농 PCC Market에 가서 브런치 거리를 준비해오시기도 했다. 내가 꿈꿨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약속했던 일주일의 자유시간은 지켜지지 않았다. 중간에 반일 정도 부모님이 우리 둘에게 자유시간을 주셨던 경우, 내가 남편의 회사 일에서 터진 문제를 챙기느라(남편보다 영어를 잘해서.... 문서 작업은 거의 내몫이다) 정신 없었던 날을 제외하면, 나는 2주 간의 모든 일정에 동행하였다. 남편이 먼저 나서서 "자기는 따로 볼 일 봐. 오늘은 내가 엄마 아빠랑 다닐게."라고 이야기해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여행이 모두 지난 후, 남편은 "내가 자기에게 시간을 준다던 그 약속을. 왜 까먹었지??? 분명히 계속 리마인드하고 있었는데. 이상해.. 정말 미안해!!!"라며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남편에게 "약속한 거 어디갔어!!"라며 중간중간 타박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었다. 남편이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남편은 더 아파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못본 채 하고 일을 하러 갈 수가 없었다.
10평짜리 집에서 2주 간 시부모님과의 숙박이라는 악몽을 피했음에도.
우리의 여행은 왜 힘들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