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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un 04. 2023

#18. 에필로그: 약해질 수 있는 자유


따뜻한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의 조회수 1은 유튜브의 조회수 1보다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화의 조회수가 10,000회를 넘고, 여러 회차의 조회수가 5,000회를 넘어섰을 때 

쏟아내듯 쓴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세심한 댓글에 놀라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결혼한지 2년된 저와는 비교가 안되는 내공을 지니신 분들께서는 제가 쓰지 않은 말까지 다 알고 계시더군요. 이 길을 홀로 힘들게 걸어오셨을 분 많은 선배님들을 생각하니 뜨거운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각자가 한 발자국씩 어렵고 더디게 나아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묘한 안도가 들기도 했습니다. 

 

<안나 카레리나>에서 그랬던가요. 불행한 가족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고. 나의 불행이 얼마나 특별한지 설명하려면 이야기 한 보따리를 풀어놓아야 하니, 가까운 친구에게도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미 말한 친구에게는 두 번, 세 번 이야기하기도 미안하구요. 나야 우리 시부모님의 심리가 궁금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파고들고 싶지만, 그 친구들에게야 큰 관심사가 아니겠죠.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도 한 몫 했습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동년배의 친구들 얼굴을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미국에 있는 제 유일한 가족인 남편에게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에게는 이렇든 저렇든, 제가 본인과 본인의 가족을 불행하게 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저는 '의연함'을 높이 사는 가정에서 자랐기에 웬만한 어려움이 있어도 티를 내지 않는데, 그런 저의 성정이 남편의 원가족들로 하여금 저를 가해자처럼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괴로움을 타인에게(시부모님에게) 일상적으로 분출해야 한단 말인가? 답답했지만, 아무리 대화를 해도 이 문제만큼은 평행선이었습니다.


그와 저에게는 곱씹고 다듬는 시간.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침묵의 시간을 형벌처럼 보내다 가슴을 풀어놓을 곳을 찾아 이 곳에 다다랐습니다. 원래 이 브런치 계정은 '반'실명으로 미국법과 유학생활에 대해서 주로 쓰려했던 터라 가족사를 주저리 늘어놓는 것이 저어되었고, 불필요한 디테일과 너저분한 감정이 가득한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 계신 분들은 따뜻하게 봐주시지 않을까. 읽기 싫으면 안 읽으면 되니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폭풍 같은 감정 상태를 글로 적어두고 싶은 조그막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지긋한 나이가 되면, 이 때는 이랬구나 생각도 하고, 새로이 며느라기를 겪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시부모님이 아프시게 되면 '이 때는 왜 저렇게 내 마음만 생각했을까' 후회하는 날도 오겠지요. 




시부모님의 2주 미국 여행은 파국으로 끝났습니다만, 저에게는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시간이었습니다. '며느리'라는 말을 바닥 끝까지 미워하고나니, 이제는 정말로 며느리가 된 기분도 듭니다. 학생인 것을 싫어했을 때 가장 학생다웠고, 여자친구인 것을 싫어했을 때 연애를 진하게 하고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요. 




Be kind to yourself. 



프로필에는 "대충 살아!"라고 대충 번역해두었지만, 미국에서 사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 말입니다. 너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렴. 나 자신에게 친절할 수가 있나.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자유와 책임이라는 원칙 하에 훈육을 받다보니, 저는 저 자신을 '길들여야 할, 적대적인 대상'으로 바라봐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숱한 거절과 외적인 좌절을 끝없이 겪으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좌절은 최소화해야 하는구나, 온 몸으로 느끼고 저 말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며느라기를 졸업하며, 며느리로서의 제 자신에게도 이런 관대함을 베풀어보려고 합니다. 나는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을 속삭이면서요. 제가 조바심을 낸들, 해결은 커녕 책임질 수 없을 만큼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남편이 알게 된 후, 남편은 매우 괴로웠다고 합니다(원베드룸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네요). 자기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이번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프라이빗한 사람이다, 불특정다수가 우리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싫다 등등, 이야기를 하네요. 그러면서도 "난 절대 글을 내리라고 한 적 없다."라고 합니다. 사생활을 침해당한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남편의 말대로 글은 내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브런치에서는 한없이 약해질 수 있어서 좋았어. 



남편이 어떻게 게시판에 글을 써서 힐링을 얻을 수 있는지 묻기에, 제가 한 대답입니다. 남편의 원가족은 저에게 '마지막 퍼즐'로서 기대하는 것이 많았고, 약함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남편의 원가족들에게 저는 언젠가부터 '강한 사람'으로 인지되었습니다. '예산 따기'든 '논문 쓰기'든 미션을 수행하는 데에 능한 편인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새 사랑 받는 기분이 좋아졌고, 사랑을 드리고 싶었고, 어느새 '며느라기'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요구란, 회사의 요구와는 달리 1회성이 아니더군요. 정서적인 요구가 겹겹이 쌓이는 가운데, 어디까지 제가 원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강제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고, 저는 차츰차츰 메말라갔습니다. 바닥으로 곤두박칠쳤을 때, 더 이상 '내가 제일 불쌍하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브런치에서는 마음껏 불쌍한 사람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내가 쓰는 글 속에서 연약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저마다 다르면서 비슷한 아픔을 겪었을 동지와 선배들을 생각하며 삶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게 친절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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