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뷰의 정원 Jun 07. 2023

#2. 스토킹을 당하다

권선징악 1편

*등장인물

-정원: 주인공 

-정선: 주인공의 여동생



2010년 6월 4일 22시 20분 

쌕쌕 600원 

한아름편의점


"어맛!!!! " 


정원은 화들짝 놀라서 영수증을 집어던졌다. 두 번째다. 알 수 없는 영수증이 핸드백 안에 편지처럼 접혀서 들어 있던 것이. 징그러워서 손에 대고 싶지도 않았다. 쌕쌕은 정원이나 정원의 여동생이 결코 사마시지 않는 음료다. 한아름편의점은 정원이 학교에서 내리는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 매일 밤 10시에 공부를 마치고 고시반을 떠나기 때문에 10시 20분이면 그 편의점 부근을 지날 때다. 


지난 번에도 비슷한 시간대의 영수증이 가방 안에서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시간도 일주일 정도 지났었고, 친구 것이 어쩌다 흘러 들어온건가 생각했었다. 이번 영수증은 어제 날짜다. 


왜 편지처럼 접어둔걸까. 

매일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메시지인가. 





두 세 달전부터 정원에게 이상한 쪽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었네.' '너 재수없는 거 알지?' 클릭하면 '삭제된 계정입니다'라고 떴다. 의문의 문자, 이메일, 소셜미디어 메시지, 그리고 영수증 같은 쪽지까지. 


처음에는 스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점차 정원을 아는 사람이 '일부러' 괴롭힌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정원의 거의 모든 계정, 휴대폰 번호, 그리고 집주소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괴롭힘을 당한지 두 세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 의한 '고의적'인 행위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정원은 자신을 향한 또렷한 적개심,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일부러 내보이는 대담함이 몸서리치게 두려워졌다. 다급하게 싸이월드,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에 있는 모든 계정을 다 삭제했다. 오래된 사진을 저장할 여유도 없었다. 


아침에 학교를 가는 것도, 오는 것도 괴로웠다. 인터넷을 켜기가 휴대폰을 보기가 무서웠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갈 수록 초췌해졌다. 왜, 왜, 왜, 대체 왜, 이러는거지? 여잔가? 남잔가? 그냥 내 존재가 싫은가?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고시반에 있는 친구들이 다 무섭게 느껴졌다. 남자랑 단둘이 길 위에서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돌랐다. 왠지 칼을 꺼낼 것 같은 상상이 들었다. 





"아, 언니 왔어."

정선이 정류장에 나와 있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10분. 그렇게 무서울 것 없는 아파트촌이지만, 의문의 영수증 때문에, 가방에 넣어놓으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대담함 때문에 정원은 도저히 혼자 걸어갈 수가 없었다. 

"무슨 미친 놈이 그런 장난을 쳐?" 정선이 말했다. 

"발신자표시제한 전화도 계속 와... 전화 받으면 이상한 소리 들리다가 끊어지고. 가끔 웃음 소리도 들리고... 이제는 발신자의 '발'만 봐도 징그러워 죽겠어."

"누구지? 도대체 누구지?" 

"나도 몰라....." 

"언니. 싸이월드도 지웠댔지? 네이버도? SK에 전화하면 혹시 어떻게 안해주나?" 정선이 물었다. 

"응. 아까 상담원이랑 통화하긴 했는데, 절차가 있나봐. 승인되면 발신자 표시제한 전화가 수신 거부되거나, 뭐 그렇게 된대. 근데 이 영수증은 어떡해? 진짜 누가 날 너무 너무 미워하나봐." 




어느 주말 저녁,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역시 발신자표시제한. 

그런데 이번에는 영상통화다. 

손을 떨면서 전화를 받았다.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 당시 휴대폰은 SKY계통이었는데, 희미한 화질로 영상통화를 제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처럼 픽셀이 깨져보이다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카메라가 또렷해지면서 뚜렷하게 윤곽이 보였다. 남자의 벗은 몸, 그것도 성기 부분을 일부러 보여주고 있었다. 


"으악!!!!!!! 미친 놈아!!!! 너 누구야!!!!!!!!!!!!!!!"

정원이 소리를 지르자, 웃음 소리가 나며 전화가 끊어졌다. 사람 소리 같지 않은, 이상하게 소름 끼치는 짐승 같은 소리. 





경찰서에 가다

일요일 오전에 여동생과 마포경찰서에 갔다. 경찰에 신고를 해보는 것도 처음이고, 경찰이 "뭐 이런 걸로 오셨어요!" 무시할 것 같기도 하고, 일요일이라 쉬는지도 모르겠고. 잘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았다. 단 하루도 더 그런 불안 속에서 살 수가 없었다. 


회색 카라티에 청바지를 입은 형사분을 만나게 되었다. 친절한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다. 주말이라 여자 경찰이 없는데 본인이 직접 조사를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럼요! 감지덕지죠." 

정선과 정원은 함께 두 세 달전부터 기억을 되짚어 가면서 하나하나 진술했다. 조사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저녁 시간이 되니 형사 아저씨들이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주셨다. 경찰서에서 밥도 주는구나. 어린 애가 스토킹 당하고 있으니 불쌍해서 사주는 건가... 


형사 아저씨는, 다행히 스토킹을 범죄로 처벌하는 법이 발효된지 얼마 안되어 우리 사건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놈이 음란물 영상통화를 한 것이 너무 다행이라고 하면서. 그것 덕분에 통신기록 영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스토킹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을 때라, 판사도 아마 영장 발부를 해줄 것 같다고 했다. 


정원: 통신기록 만으로 스토킹이 입증이 되나요..? 음란물 영상통화라는 것이 기록에 남아 있나요? 

형사: 그건 아닐 거에요. 그냥 수신자 발신자만 볼 수 있을 겁니다.

정선: 그러면 그 사람이 부인하면 어떡해요? 음란물이 아니었다 라던가.

형사: 그럴 수도 있을텐데, 아마 부인 못할 거에요.

정원: 그래요?

형사: 네. 아마 자백할 겁니다. 그런 놈들이 간이 작아서 자백해요. 보통.

정선: 영수증이나 다른 것들은 증거자료로 활용이 안되죠?

형사: 네.. 지문도 찾기 힘들거고... 아마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정원: 그러면, 통신기록이 꼭 필요한 거군요.

형사: 네, 안되면 지웠다고 하시는 싸이월드 계정이랑.. 그 쪽에 또 계정복구 요청하고 정보 달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또 인터넷 계정이라 아마 부정확할 거고. 통신기록으로 밀어봐야죠.

정원: 네...누군지 잡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형사: 벌금형이든 뭐든 받게 되겠죠.

정원: 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선: 감사합니다. 


[김밥나라] 

정선: 언니, 그 놈 꼭 잡았으면 좋겠다. 나도 언니 매일 데리러 나가는 거 힘들다. ㅋㅋ

정원: 응... 근데 한 명이 아니면 어떡하지?

정선: 그래도 제일 악질인 놈 잡는 거니까. 

정원: 진짜 더럽다. 인생 왜 이러냐. 

정선: 그러게. 살다살다 별 일을 다 겪네. 난 그 영수증이 제일 징그러워. 언니 고시반까지 따라왔다는 거잖아. 고시반에 누구 있는 거 아니야?

정원: 악!!! 생각하기도 싫어. 밥이나 먹자.. 



그로부터 2주일 쯤 지났을까. 

형사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가의 이전글 #2.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