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뷰의 정원 Jun 09. 2023

#4. 형사전문 변호사를 만나다

권선징악 3편 

*등장인물 

- 정원(나): 주인공

- 정선: 주인공의 여동생

- 철종: 스토커

- 경희: 정원과 정선의 엄마 



정원은 당시 행정법 수업을 듣고 있던 교수님을 찾아갔다. 스토킹 사건으로 이렇게 진행이 되어, 증거도 있고, 경찰도 사건이 잘 진행될 거라 보고 있는데, 이 사람이 나에게 너무 애원을 한다. 나도 마음이 괴롭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교수님께서는, 형사전문 변호사를 찾아가라고 하셨다. 본인이 잘 아는 선배가 있으니, 소개해주겠노라고. 변호사? 나는 소송을 할 것도 아닌데? 경찰이 내 권리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데..? 교수님은 변호사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며, 새로 개정된 법을 적용하는 것이라 이것 저것 까다로울 수도 있고, 형사 사건은 웬만하면 변호사 선임하는 것이 나에게 좋을 거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변호사 수임료...가 얼마 일까. 장학금에 간신히 기대어 살고 있던 시절이라, 엄마한테 변호사 수임료를 달라고 할 수 있을지, 엄마가 이 사건을 다 알게 되면 또 얼마나 걱정을 하실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교수님께 

'말씀은 감사하지만, 변호사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혹시 수임료 때문이냐' 물으시면서 '얼마 안들거고, 혹시 들면 내가 내 주도록 하겠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연락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정원은 교수님으로부터 돈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저렇게까지 추천을 해주시니... 그래, 어떻게든 돈은 마련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연락처를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변호사를 만나다 


그 날도 정선과 함께였다. 교수님이 바로 연락을 해보라기에, 전화를 드렸더니 주말에 당장 찾아오라고 하셨다. 역삼역 고층 빌딩 16층이었다. 주말인데도 출근한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다. 김oo라고 서 있는 변호사 실에 문을 두드렸다. 작지만 단단하고 마음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 


변호사: 오, 자매가 같이 왔군요. 

정원, 정선: 네. 

변호사: 송 교수한테 이야기는 좀 들었어요. 스토킹을 당했다고.. 마음 고생이 심했겠네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커다란 테이블 위에 유리가 있고, 유리 밑에 1시간 상담료 25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헉! 25만원이구나. 카드 잔액이 있겠지. 카드가 되나? 1시간만 하는 게 아니면 앞으로는 돈을 어떻게 내지? 


변호사: 아, 상담료는 신경쓰지 마세요. 학생인데, 괜찮습니다. 

정원: 아니에요. 그럴 순 없죠. 주말에 일하시는 건데. 괜찮아요. 

변호사: 그 얘기는 나중에 하죠. 일단 오늘 상담은 무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원: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고소를 취하해야 할 것 같다고. 그런데 앞으로가 무섭다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이따금 눈물이 흘렀다. 변호사는 의외의 말을 했다. 


변호사: 음... 돈을 청구해야 할 것 같네요. 

정원: 네? 돈이요?

변호사: 네! 이럴 때는 돈으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합니다. 정원씨는 그런 생각이 드시는 거죠? 폭력이나 강간도 아니고, 그냥 스토킹인데 범죄 기록까지 남기는 건 미안하다. 그런데 확실하게 레슨은 주고 싶다. 왜냐면 정원씨가 맘 고생을 너무 많이 했으니까. 바로 그럴 때 피해자가 가해자와 손해액으로 합의를 보는 겁니다. 가해자를 도와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렇게 범죄기록이 남는 걸 원치 않는다면서요. 

정원: 아.... 전 싫어요. 제가 스트레스 받았던 것은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기도 하고요. 그 사람 돈은 솔직히 한 푼도 받고 싶지 않아요. 받아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요. 그 사람이 돈을 주고 나서 '아휴, 돈 주고 끝냈다' 이렇게 훌훌 터는 것도 싫어요. 모르겠어요.. 그냥 돈은 싫어요. 

변호사: 음, 정원씨. 그러면 그냥 고소를 취하해주고 싶은 거에요? 

정원: 네. 각서 같은 것 받고, 취하해주고 싶어요. 

변호사: 손해배상 받고 각서 써달라고 해도 돼요. 


그 순간 정원은 돈이 엮이면 왠지 자신의 아픔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재산적 손실을 입혔으면 금전으로 배상을 받으면 되지만, 지난 몇 달 간 스토킹으로 인한 모멸감, 괴로움, 불안함은 돈으로 해소될 것 같지가 않았다. 


변호사: 정원씨. 우리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첫째, 사건을 그냥 내버려두는 거에요. 제 생각에 징역은 아니고, 벌금형 정도는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죄는 아닐 거에요. 이것도 나쁘지 않아요. 정원씨만 마음이 괜찮으면 말이죠. 


둘째, 아무 것도 받지 않고 고소를 취하하는 것. 이 경우 그 사람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게 됩니다. 지금 미안하다고 하고 죽을 죄를 졌다고 하지만, 말만 하는 거에요. 그 사람은 정원씨를 더 괴롭히진 않겠지만, '이렇게 사과를 하면 불법행위를 해도 괜찮구나'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됩니다. 


셋째, 합의금을 받고 합의를 해주는 겁니다. 앞으로 연락하지 않겠다 등등 합의서도 써야죠. 돈을 받는 것은 상징적인 거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해를 준 것을 돈으로 갚는 것은 나쁜게 아닙니다. 또 그 사람도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일부 양보해야 앞으로는 같은 일을 하면 안 되겠다고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만약 합의금을 받지 않을 거라면 고소를 취하하지 마세요. 저는 그 방법이 가장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원씨에게도, 그 사람에게도요. 그 사람 돈을 만지기도 싫다면, 어디 좋은 곳에 기부를 하세요. 그렇게 해야 정원씨도 이 사건에서 어느 정도 맺음을 하고 넘어갈 수가 있어요.




맺음을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왠지 이해가 됐다. 

합리적인 말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원: 아.. 합의금은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변호사: 천 만원 받으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정원: 네? 천 만원이요? 그건 너무 많은데요. 

변호사: 천 만원 이상 스트레스 받은 거 아니에요? 

정원: 그건 그렇지만... 너무 많아요. 왠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변호사: 그러면 얼마 정도면 좋겠어요?

정원: (정선을 바라보며) 정선아, 어떡하지. 얼마 정도면 좋지? 


정선과 정원이 상의를 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200만원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결론에 이르렀다. 



변호사 아저씨는 왜 3백만원도 아니고 2백만원이냐 재밌어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철종에게 전화를 했다. 



이렇게 바로일 줄은 몰랐는데.

받을까? 받지 않을까?

정선은 정원의 손을 잡았다.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너무 유단 떤다고 하는 거 아닐까.

저 변호사님은 이런 사건을 너무 많이 봐서 주저함이 없구나.




"안녕하세요, 김철종 님. 저 김정원님 대리를 맡게 된 xxx변호사라고 합니다. 통화 되시나요?"


헉. 받았나보다. 스피커폰이 아니라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할지 궁금했지만. 그래, 그 사람의 목소리는 역시 듣고 싶지 않다.


"네. 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철종 님 최근 스토킹 관련으로 xxx법과 xxx법에 따라 수사받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네네. 사실관계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변호사를 선임하셨다면 제가 그 분과 통화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안하셨다구요. 그러면 제가 철종씨께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정원씨에게 전화를 거셔서 선처를 요구하셨다는 내용도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정원씨가 아니라 제게 연락을 주시길 바랍니다. 정원씨가 원치 않는데에 계속 그렇게 연락을 취하시면 또 다른 형사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지금 일요일에도 일하고 있듯이 전 거의 전화를 받으니까, 편하게 아무때나 연락주세요."


와. 저런 방법이. 변호사는 내 전화를 대신 받아줄 수 있구나!! 

경찰은 철종을 혼낼 수는 있지만 정원의 전화를 대신 받아줄 수는 없었다. 이래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거구나. 와우! 내 편의 가디언이 생겼다, 그것도 법적 지식이 충만한 가디언.


"제가 일요일인데도 전화를 드린 이유는, 김정원씨가 원하시는 사항을 하루라도 빨리 전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정원씨는 고소를 취하해주고 싶어하십니다. 철종님이 여러 차례 호소하셨듯, 이번 일로 철종님 인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정원씨가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종님께 합의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네, 합의요. 고소를 취하해주는 조건입니다."


"합의금은, 2백만원입니다."


"너무 많은 거 아니냐구요? 사실 저는 1천 만원을 정원씨에게 제안했으나, 정원씨가 마음이 착하셔서인지 2백만원을 제안드리고 싶어하십니다. 제 변호사 생활 15년 만에 이런 분은 처음 봤네요."


"그런 말씀은 조금 적절하지 않네요. 철종씨가 많다고 생각하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 협박 아닙니다. 저희는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철종씨께서 받아들일 수 없으시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네, 변호사 선임하시겠다구요. 그것도 좋습니다. 생각해보시고, 변호사 선임되면 저에게 연락주도록 해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20분 정도 이어진 통화. 엉겁 같은 시간이었다.







Image by 鹈鹂 夏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3. 범인이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