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뷰의 정원 Oct 04. 2023

남편은 착한데 모질다

알고보니 내 이상형이었던 것


앞의 포스팅에 보듯이 척박한 미국 상황 등 배우자가 필요했던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 결혼할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냐"고 물으면,

"착하긴 착한데, 세탁소에서 옷을 잃어버리면 나 대신 세탁소 아저씨에게 따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을 했었다. 친구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걸 꼭 따져야 돼?"라는 친구도 있고 "뭐 그딴 걸 조건이라고 거냐."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상대방과 논리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잘한다. 그래서 직장 상사에게 문제제기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세탁소 같은 경우는 참 모호하다. 아마존 같은 대형마트가 아니라 소형 점포이니 경제적 손실을 안겨드리는 게 죄송스럽고. 그런데 내 없어진 옷은 아깝고. 내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면, 아저씨가 정색을 하고 다 갖다주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것 같고. 보낼 때와 받을 때 일일히 사진을 찍어놓은 것도 아니니 증거도 영수증 밖에 없다. 아휴 어쩌지, 하다가 그냥 '에이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자'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해서 속상했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탁소 은유를 오랫 동안 잊고 있다가 이번에 떠올라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답했다.


"우와 ! 딱 나네!"






남편은 손해를 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남편은 세상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쁜 사람은 세상의 '응징'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남편은 누군가 나쁜 의도로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려고 할 때 방어의 액션이 빠르다. 증거가 불충분하고 해석에 모호함이 있어도, 본인의 불만사항을 깔끔하고도 확실하게 전달한다. 본인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더 이상 주저함이 없다. 남편의 단호함을 보고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편의 뜻에 수긍한다(!). 


남편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상한 사유를 들어 환불을 해주지 않으면, 기꺼이 3시간 동안 상담사와 챗팅을 해서 환불을 받아내고야 만다. 예전에 캘리포니아에서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서 베드버그가 나왔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비록 계약서 조항은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었지만, 아파트 관리소에 가서 여러 번 따지고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압박을 해서 새로운 아파트로 교체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로스쿨에서 법학 공부를 오래 했지만, "변호사를 선임하겠다" "이건 법적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따지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다'고 믿기에, '저 사람이 잘못을 했어!! 날 이용하고 있어!!' 이런 생각 자체를 잘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다보면 나의 이익이 침해되더라도 제 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우리 집안의 '애매한 실랑이 담당'은 남편이다. 남편이 '액수가 작으니 이번 일은 넘기자'라고 판단하면, 나도 마음 편하게 넘긴다. '논리적인 실랑이 담당'은 나다. 걸려 있는 액수가 아주 크거나,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경우에는 계약서의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차가운 이메일을 보내는 건 내 역할이다. 남편은 그런 걸 상세히 읽고 증거를 샅샅이 찾는 것이 너무 괴롭다고 한다. 난 사람 간의 감정이 걸려 있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린 무적의 콤비가 되어간다.



착하면서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 어찌보면 굉장히 어려운 조합이다. 자기 손해에 민감하고 할 말을 확실히 하는 사람은, 사실 친구나 가족에게도 모질기가 쉽다. 그런데 남편은 '공정의 감각'이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무한히 착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선을 넘지 않는 한 신나게 자유를 누리며 배려를 받을 수 있다. 남편은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내게 짜증을 내지 않는다. 어쩌다 일이 잘못되어서 크게 속상할 일이 생겨도 나를 탓하기 전에 상황을 먼저 탓한다. 남편이 내게 화를 낼 땐 내가 본인의 의도를 오해할 때이다. 대부분 좋은 의도를 갖고 했던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이 팽팽한 균형감각을 지니며 살아온 것을 감사히 여겼다. 이 곤란한 업무를 평생 대행해줄 사람이 생긴 것이 나에겐 큰 안도이다.






하버드 경영대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애덤 그랜트는 인간 유형을 "주는 사람" (giver), "받는 만큼 주는 사람" (matcher), "남의 것을 뺏는 사람" (taker)으로 구분한 적이 있다. 남편은 100% matcher이고 나는 giver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내가 주면 남편은 내게 받는 만큼 돌려주므로, 우리 둘이 있을 때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문제는 내가 타인에게 기버 성향을 발휘할 때 생긴다. 남편은 내가 타인에게 시간을 쓰는 데에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친한 친구가 시애틀에 오면 나는 공항으로 태우러 가고 싶은데, 남편은 "그 정도 친한 친구야?"라면서 딴지를 놓는다. 또 나는 안입는 옷을 기부하고 싶은데, 남편은 "팔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한다. 기부하는 데에 드는 나의 시간과 노력(운전해서 멀리 가서 줄을 서거나 온라인으로 나눔을 어레인지하거나)이 아깝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내 맘대로 내 시간을 쓰는데 주저없이 딴지를 놓는 남편의 담대함에 놀랐었다. 나는 누구와 얼만큼씩 서로 주고 받았는지 계산을 하는 것이 피곤하다. 머리 쓰지 않고 체력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남들과 나누고 싶다. 거기에서 뜨거운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남편의 예상치 못한 반대에 부딪쳤을 때 너무 좌절스러워 가끔은 울기도 했었다.


그렇게 얼마 간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 덜 불편한 쪽으로 차츰차츰 정리가 되었다. 남편은 내가 옷을 파는 것을 열심히 돕는다. 같이 세컨핸드숍에 한참 운전해서 가서 줄을 선다. 10벌을 팔아봐야 30불 정도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선 성한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 누군가는 기쁘게 입을 테니까.


친구가 놀러오면 공항 픽업은 잘 못 가지만, 대신 식사 초대를 한다("(나도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싫지만) 우버타고 와라 친구야!"). 내 친구 가족이 우리 집에 올 때 남편은 2시간 동안 돼지고기를 끓여서 수육을 만들고 어린이용 메뉴까지 따로 요리한다. 내가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동안, 남편은 조용히 설거지를 한다. 누군가는 그런 노동이 싫겠지만, 남편은 콧노래를 부른다. (1) 돈 안 들고 (미국은 돼지고기가 매우 싸다), (2) 밤늦게 내가 안 나가니까 마음이 놓이고, (3) 친구들과 잘 놀고나면 나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니 싫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바운더리를 탐색하고 함께 행복한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결혼생활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끼리 만났기에 갈등이 없을 순 없지만, 서로 앵글을 조금씩 조정하면 교집합을 찾을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