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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Apr 11. 2016

18년 만의 엄마 노릇

그동안 못해 본 거 한 번씩만 하는 걸로......

     며칠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 갈 때 엄마가 함께, 또는 먼저 집을 나서지 않고 집에 있는 것에 대해  무척 신기해했고 자기들이 학교 간 사이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이제 한 달이 더 지난 지금은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이제 관심이 있는 건 엄마가 해 놓은 간식이 무엇인지, 저녁 반찬은 무엇인지 정도? 사실 어디에 배달을 시켜봐도 한국서 먹는 치킨 맛이 안 나기에 집에서 닭을 튀겨보았더니 그게 훨씬 맛있었던 후로 보쌈이며 자장면이며 깍두기며 열심히 만들어먹고 있는 중이기는 하다.

   

     18년 만에 집에서 쉬게 되면서 마음먹은 것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엄마 노릇 제대로 하기'이기에 그동안 일하는 엄마이기에 못 해줬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다. 지금까지 해 본 리스트.


첫 번째, 학부모 총회 참석하기

     언제나 학부모 총회 때 난 정장을 빼 입고 무척이나 긴장한 채 교실서 우리 반 학부모들을 만났었다. 그런데 올해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부모 총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역시나 담임 선생님은 무척이나 긴장하신 것 같았다. '그래, 지금 선생님의 심정이 어떤 지 내가 다 이해하지....' 그렇게 마음 푹 놓고 그 자리를 즐기고 있는데 엄마들을 소개하시면서 선생님께서 내 정체를 다 알리셨다. 처음부터 그러는 게 편하실 거라며. 원래는 국어 선생님이시고 올해 부임하신 국어 선생님 사모님이시라고. T.T  학부모 총회 끝나고 집에 오는 데 반 엄마들 중 한 명이 날 부르는데, 호칭이 '저 선생님은 어디 사세요?' 그렇게 난 엄마도 선생님도 아닌 외톨이가 되어 내 첫 번째 학부모 총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요즘 동네에 봄꽃이 한창이라 왔다갔다 하면서 찍은 꽃사진 함께 올려요.



두 번째, 반모임 참석하기


     엄마들끼리 모이는 반 모임. 점심때 모여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직장맘들은 외출을 하거나 조퇴를 해야만 참석을 할 수 있다. 근무할 때 보면 선생님들 중에 시간표를 바꿔서 참석을 하는 분들도 계시긴 했다. 하지만 난 워낙 낯가림도 심하고 또 모여서 하는 얘기가 뭐 그리 선생님한테 호의적인 얘기만 있을 수는 없어서 나 같은 경우 미리 선생님이라는 것을 강하게 밝혀(그것도 아주 바쁜 고등학교 담임) 자의 반 타의 반 불참하곤 했다. 시은이 반에서는 이미 선생님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이번에는 가은이 반 반 모임에는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이러니 꼭 무슨 결사대 같구먼... 사실 두 군데 다 참석하기 귀찮아서 한 군데만 참석하기로 마음먹은 것임) '자하문'이라는 약속 장소를 모른다고 채팅에 올렸건만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더라. 그래서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자하문의 중국어 표기를 알아낸 후 중국 지도 앱인 바이두 지도에 입력해서 찾아보니 내가 맨날 걸어 다니던 곳에서 한 블록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되는 곳에 있었다.(알고 보면 거의 대부분의 장소가 이런 식이다. 왕징에 오밀조밀 다 붙어 있어서 내가 다니던 곳에서 조금만 새로운 곳으로 가 보면 그곳에 신세계가 펼쳐진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5월에 있을 테마학습 이야기, 학급비 이야기, 중간고사 이야기 등등 또 누가 공부를 잘하고, 누군 운동을 잘 하고, 누군 집에 와서 학교 얘기를 전혀 안 하고.... 그런 사소한 이야기 등을 3시간 여에 걸쳐서 나눴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봐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동안 같은 반은 아니었더라도 얼굴들은 아는 듯한 분위기였다. 끝나고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니 어머나, 인사도 없이 다들 쿨하게 집으로 가버렸네.^^ 하긴 헤어지는 인사까지 나누고 같은 쪽으로 가게 되면 그것도 어색하긴 했을 것이다. 어쨌든 처음으로 참석한 반 모임, 반 모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되어서 나름 의미 있었다고 자평하며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동네 하천. 물이 그닥 깨끗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이렇게 낚시를 한다. 물고기를 잡아서 먹을까? 아니 물고기가 잡히기는 할까?


세 번째, 급식 도우미 활동하기

     학교에서 하는 여러 도우미 활동, 특히나 초등학교 때 많이 해야 했던 급식 도우미라든지, 반청소라든지, 녹색 어머니 활동 등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 더 나아가 사실 이런 활동은 학교 자체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왜 학교의 일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학부모에게 봉사라는 이름으로 떠 넘기는 건지, 아이 가진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또 맞벌이하는 부모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라는 신념으로 절대 참여를 하지 않았었다. 다행히 파주의 초등학교들은 웬만한 일들은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을 많이 해서 학부모들을 그다지 많이 불러들이지 않았고 또 담임선생님들도 내 직업을 보고는 배려를 해주시곤 했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담임선생님 배려 차원에서 급식 도우미를 먼저 해보겠다고 자원을 했다. 물론 바로 '안 해도 될 걸' 후회를 하긴 했지만....... 2학기에 2번 당번인 날 가서 조리 과정을 참관하고 배식을 도와주고 그날 급식의 맛과 메뉴를 평가하면 된단다. 별 것도 아닌 일이더구먼 그 일을 위한 사전교육을 위해 아침 10시까지 학교로 모이라고 급 연락이 와서 갈까 말까, 또 급 고민을 하다 결국은 참석을 했다. 첫 급식 도우미니까. 그러나 역시나 안 가도 될 걸 그랬다. 급식도우미 활동에 관한 중요한 설명은 정작 5분쯤, 나머지는 다들 의례적인 순서들...... 왜 난 학교란 곳을 뻔히 알면서 맨날 속는 것일까?


     막상 이렇게 적고 보니 집에 있는 엄마로서 처음 해본 일이 몇 가지 안 된다. 그런데 왠지 뭔가 대단히  많은 일을 한 것 같고 아주 많이 피곤하고 그렇다. 아마 그건 그 몇 가지 안 되는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자꾸 이런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지금까지 그렇게 안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내가 극성 엄마가 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또 그런다고 해서 우리 딸들의 삶의 뭐가 그리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무책임한 엄마의 변명이려나? 18년 만에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 그동안 안 해 봤던 것들 다 한 번씩만 해 보는 걸로. 나머지는 집에서 맛있는 밥 해주기로 퉁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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