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녕사(普寧寺),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廟), 수미복수지묘(须弥福寿之庙)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묵은 중국의 4성급 호텔은 너무 추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분명히 따뜻한 바람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건만 온풍기에서는 찬바람만 쌩쌩. 안 되는 말로 물어보니(그중 그래도 가장 열심히 공부하신 분이 대표로^^) 난방 공급이 끝났단다. 맞다. 여긴 중국이다. 중국의 난방은 나라에서 통제를 하는 국가 주도의 중앙난방시스템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북경은 11월 15일부터 3월 15일까지 난방이 실시된다. 그러니까 이미 난방은 끝난 것이다. 그래서 각 방마다 이불을 더 달라고 해서 애들만 더 덮어주고 어른들은 옷을 더 껴입고 잤다. 아, 우리나라를 떠나올 때 마지막 묵었던 메이필드 호텔이 너무도 그립다!!! 더워서 이불 차 버리고 자던 그곳이......
우리가 오늘 둘러볼 곳은 피서산장의 배후에 둘러서 있는 산 중턱에 청나라가 건설하고 재정지원을 했던 8개의 라마교 사찰들이다. 외팔묘(外八廟)라 불리는 이곳은 고종(건릉제) 시대에 티베트 건축 형식을 따라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보던 사찰과는 다른 모습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그중 제일 처음 간 곳은 보녕사(普寧寺)이다. 건륭황제가 친필로 내려보냈다는 '보녕사'라는 뜻은 '사해 안에서 편안하게 생활하고 즐겁게 일을 하고 영원히 편안하게 하라'라는 뜻이란다.
보녕사는 건륭제(乾隆帝)가 몽고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것을 기념하여 1755년에 건설한 사찰이다. 이 곳의 사찰들은 황제가 드나들었던 곳이어서 일반 사찰과는 다른 양식들이 있단다. 입구의 세 개의 문 중, 중앙은 황제가 왼쪽은 문관이 오른쪽은 무관이 출입했다고 한다. 또한 들어서자마자 서 있는 비정(碑亭)에는 높이가 6.5m에 달하는 3개의 커다란 돌비석 서 있다. 만족어, 몽골어, 티베트어, 한족어로 된 비석인데 이는 청나라가 다른 민족을 아우르려 펼친 회유 정책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크기에 압도당하고 또 한족의 언어가 맨 뒤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며 인간사의 무상함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비정을 지나면 오른쪽에 종루가 왼쪽에는 북루가 나타난다. 종루는 사찰이 문을 열기 전에 종을 치는 곳이고 북루는 사찰이 문을 닫기 전에 북을 치는 곳이다. 그리고 천왕전을 지나면 대웅보전이 나온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을 일컫는 말이다. 역시나 여기도 많은 사람들이 피워내는 향연기로 자욱했다.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향을 참 많이(우리가 생각하는 한, 두 개가 아니라 아예 묶음으로, 그것도 한 번에 몇 묶음씩) 피우며 각자의 소원을 빈다. 이 사찰이 특이한 점은 여기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이 대웅보전을 경계로 하여 지금까지 본 사찰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사찰의 모습(한족의 사찰)이라면 대웅보전 후면부의 모습은 티베트 사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이 곳은 여전히 수도를 하고 있는 라마승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코끼리는 여유를 상징한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 코끼리 상은 특이하게 원숭이, 토끼, 새가 코끼리 위에 차례로 올라가 있는 모습이었다.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으니...... 대웅보전에서부터 전경당(傳經幢)이 계속 나타나는데 이것을 한 번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보이는 전경은 다 돌리고 돌아다녔다.^^
계단을 올라 대승지각에 도착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찰의 풍경이 펼쳐진다. 하얀색과 붉은색이 조화된 건물들이 눈에 띄는데 바로 티베트 사원의 모습이다. 불교의 사찰 양식과 라마교의 사원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이 대승지각에는 세계 최고 높이와 중량의 목조불상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자리 잡고 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 그 모습을 보았는데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와~'라는 감탄사만 흘리며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높이가 21.8m, 허리둘레만 15m, 무게가 100톤에 달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상이다. 정말 그 크기에 압도당하다가도 하나하나 조각했을 옷자락의 부드러운 곡선이며 그것을 치장하고 있는 보석, 그리고 부드러운 몸의 형태까지 너무도 세밀하여 눈을 뗄 수가 없다. 정말 어느 하나 흠잡을 수 없을 정도의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 불상이 하나의 통나무로 만들어졌다기에 더 놀라웠는데 글을 쓰기 위해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것은 옹호궁 만복각에 있는 목조불상이었다. 이 불상은 소나무, 측백나무, 느릅나무, 자작나무, 삼나무 등 5가지 목재를 사용하여 만들었단다. 2개가 다 유명한 목조불이기에 가이드가 잠깐 헷갈렸던 듯하다. 합장하고 서 있는 등 뒤로 40개의 손이 뻗어 나와 있으며 손에는 눈이 달려 있다. 어떻게 그 옛날에 이런 크기의 불상을 제작할 수 있었을까, 또 이 불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정성이 뒤따랐을까를 생각하니 놀랍고 경건할 따름이었다.
보녕사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에게 압도당하고 그다음 찾아간 곳은 외팔묘(外八廟)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는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廟)이다. 티베트의 라싸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포탈라궁을 모방하여 건축하여 소포탈라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곳은 건륭제가 어머니의 80세 생일을 축하하여 세웠단다. 전부 60개의 건축물이 있다는 이 곳의 대부분의 건물은 평평한 지붕에 흰색 담장으로 되어 있는 티베트 사원의 모습이다. 멀리서 보면 창문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모형(이런 가짜 창문을 맹창盲窗이라고 한단다.)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건물의 기본 색을 이루고 있는 흰색은 종교, 붉은색은 정권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건물의 외관은 티베트 양식이나 내부는 한족의 양식으로 되어 있어 다른 민족을 융화시키려고 했던 노력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보타종승지묘는 완만한 산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점차 높아지는 형태로 되어 있어 천천히 올라가며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양쪽에 코끼리가 호위하고 있는 오탑문(五塔门)(티벳식 백대 위에 있는 다섯 개의 탑)을 지나면 황제나 라마승려 외에는 출입할 수 없었다는 화려한 색감의 유리패방(琉璃牌坊)이 나타난다. 양쪽에는 사자가 호위하고 있으며 다양한 색깔, 재료 등이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멋진 경치를 보여준다.
이 곳의 가장 중심 건물이라 할 수 있는 대홍대(大红台)에 오르면 온통 붉은색 건물이 눈에 꽉 찬다. 여기에도 흰색으로 되어 있는 가짜 창문이 있어 역시 붉은색과 흰색의 조화를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천들을 끈에 엮어 놓은 것이 눈에 띄는데 분위기가 우리나라 성황당(城隍堂)에 달아놓은 오색 비단 헝겊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을 '타르초'라고 한다는데 이 천조각에는 경전들이 적혀 있어 천들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어려운 경전의 내용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대홍대의 정중앙에 세로로 여섯 개의 불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데 꼭 부처님이 아파트에 입주하신 것 같은 느낌에 혼자 웃었다.^^ 대홍대의 중심부에는 청 황제가 소수민족의 지도자와 귀족, 대신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만법귀일전(萬法歸一殿)이 있는데 도금된 기와로 지붕 전체가 덮여 있다. 햇살을 받아 더욱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기와 너머로 바라보는 하늘이 매우 푸르렀다.
수미복수지묘(须弥福寿之庙)는 티베트의 허우짱이라는 지역에 있는 판첸라마의 다시룬포 사원을 본떠 건설한 곳이다.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당시 판첸 라마가 열하까지 찾아오자 건륭제가 그를 위해 지어 준 것이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제2의 지도자이며 다시룬포 사원의 수장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관음의 화신이 전생한 사람이 달라이 라마이며, 아미타불의 화신이 전생하여 나타난 것이 판첸 라마라고 믿고 있다.(그래서 이 곳을 판첸라마가 묵었던 곳이라 해서 반선행궁班禅行宫이라고도 부른다.)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는 번갈아 가며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서로의 스승 역할을 하면서 티베트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중국의 티베트 강제 합병 후 10대 판첸 라마가 죽자,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환생자로 인정한 판첸 라마(당시 6세)를 납치해 가두고 어용 판첸 라마(부모 모두 티베트의 중국 공산당원)를 지정해버린다. 지금도 어용 판첸 라마는 열심히 중국 지지 선언을 하고 다니고 있고, 납치된 판첸 라마는 아직까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단다. 역사상 어느 나라든지 간에 다른 민족을 지배하기 위해서라면 악의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기본인 것 같다.
너무나 새롭고 신기하게 보였던 티베트 사원 양식의 건물도 이젠 슬슬 감흥이 떨어져 가고 있는 건, 이 곳이 세 번째 방문 장소이기도 하지만 다리가 너무 아파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중국 여행을 하려면 두 다리가 튼튼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워낙 크기가 압도적인 것들이 많아서 둘러보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만 한다. 수미복수지묘의 대홍대는 티베트 양식 그대로의 건물과 한족 양식인 중앙부와 건물의 지붕의 조화가 재미있다. 중앙의 건물을 묘고장엄전(妙高莊嚴殿)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수미복수지묘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 될 것이다. 네모 지붕에는 금으로 도금한 기와를 올렸으며 2층 지붕의 용마루에는 8마리의 금룡(무게 1t)이 장식되어 있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어마어마한 금룡의 크기 하며, 지붕 위에 올라앉아 있는 발의 발톱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건물 자체가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기에 저 무게의 금룡을 8마리나 지붕에 올리고도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한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