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여행 1 -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시라무런((希拉穆仁) 초원
둘이 벌다가 신랑 혼자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을 해야 하니 씀씀이가 넉넉지 못하다. 거기다가 북경은 외국인이 살기에 물가가 높은 도시 10위에 해당될 정도로 비싼 생활비를 자랑한다. 또 이곳 왕징은 북경에서도 왕징 특별시라고 할 정도로 물가가 다른 북경지역의 2배 이상은 비싼 것 같다. 누구를 탓하랴? 왕징에 한국인들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인 관련 사업들이 번창하기 시작했고 본인들 입맛에만 맞으면 얼마를 부르든 마구 돈을 써댄 한국인들 잘못인 것을...
그렇게 매번 돈이 없어 허덕이면서도 단오절 연휴에 내몽고 여행 공지가 뜨자 우리 식구들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에 이미 가본 적이 있는 나와 신랑 그러할 진데, 초원이라는 곳을 처음 접하게 될 두 딸들은 더욱. '그래, 돈이야 어차피 없는 거. 코딱지만 한 집에 붙어 있으려고 모든 것 다 버리고 중국까지 온 게 아니다. 우리에게 남는 건 여행밖에 없다!'라는 생각으로 한 달 월급의 3분의 2를 쏟아부어 내몽고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갔다 와서 남은 한 달을 버티는 것은 나중에 걱정할 일.^^)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 상품에 우리 팀이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사, 운영이 너무 중국스러웠다. 목요일 밤기차로 출발해서 일요일 아침에 북경에 도착하는 일정을 의뢰했었는데 본인들 마음대로(실수였겠지만) 수요일 밤부터 토요일 아침 일정으로 바꿔 일을 진행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확정된 여행 일정을 보내달라고 우리 쪽에서 이야기를 했건만... 나중으로 미루다 미루다 출발 3일 전에야 보내온 여행 일정표를 보고 우리 쪽이나 그쪽이나 놀라긴 마찬가지.... 우리 쪽 모든 인원들에게 일정 진행이 가능한 지 일일이 확인을 하고 일정에 맞춰 한국서 오시는 분들은 여행사 측에서 비행기 표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수요일 밤에 무사히 북경을 떠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여행사의 중국스런 진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밤기차를 타기 위해 북경 서역에 도착해서 버스 댈 때가 마땅치 않아 그냥 길거리에 내려진 건 애교라 치자. 더군다나 공기오염 지수 300에 가까워진 그날 밤, 여기저기서 피워대는 담배 연기까지 맡으며 길바닥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차표 발권을 또 다른 중국인에게 맡긴 탓에 그 사람이 와야 표를 받을 수 있는 거였다. 그래, 이것도 운영상의 묘미라고 하자. 중국인 내외가 와서 나눠주는 기차표를 받았는데 뭐가 문제가 생긴 건지 또 뭔가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설명도 없이 한참을 기다리다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봤더니 몇몇 사람 기차표에 이름이 잘못되어 있어 고치려고 갔다는 것이다.(중국은 기차를 탈 때도 공항 검색대처럼 여권과 표를 확인한다) 그런 얘기가 나돌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들 자기 표를 확인해 봤더니 이름 틀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권번호가 틀린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런데 처음엔 이름 틀린 것을 정정해야 한다던 여행사 측에서 다 괜찮다고 여권번호가 틀려도 탈 수 있다고 어서 가자고 한다. 장난하나? 그럼 우린 이 스모그 가득한 밤거리에서 왜 1시간 반 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냔 말이다!!! 기차 시간이 15분 여 밖에 남지 않아 하는 말이 뻔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했다. 다행히 표를 발권한 그 중국인 내외가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검색대를 여권 확인 없이 무사통과했다. 그리고는 처음 가보는 낯선 북경 서역을 마구 달려서 겨우 기차에 올라서자마자 기차가 출발했다. 언제나 중국의 기차는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타게 되는군.... 화나는 거 반, 그래도 이렇게 출발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는 마음 반. 그렇게 내몽골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주 개방적인 중국 기차 6인실. 문이 아예 없다.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데 그냥 자야 한다. 그래도 맨 아래칸은 사람이 앉아 있을 수 있는 높이이나 둘째 칸은 엎드려서 올라가야만 하고, 셋째 칸은 포복 수준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높이다. 그래서 위칸 사람들은 복도에 있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잠잘 때만 자기 자리에 올라가서 잔다. 어쨌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위, 아래, 옆에서 어울려 자는 것, 참 묘한 느낌이다.^^ 그래도 난 한 번 겪어 봤기에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중국 와서 처음으로 6인실 기차를 탄 일행들은 기차 타기 전 일부터 시작해서 악몽 같은 여행의 시작이었단다.^^
다음 날 아침 도착한 후허하오터 역.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안심도 잠깐. 큰길을 건너 역의 전체 모습을 찍겠다고 한 순간, 큰 딸의 휴대전화가 없어졌음을 확인했다. 분명 길 건너기 전까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복잡한 횡단보도를 사람들에 밀려서 건널 때 없어진 것이 확실했다. 여행을 위해 음악이며 영화며 잔뜩 담아 온 큰 딸의 정신은 이미 가출 상태.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할 수 없어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비싼 전화는 아니다만 생전 처음 갖게 된 스마트 폰, 이제 사용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걸 눈뜨고 도둑맞은 아이의 심정이 오죽하랴 싶었다. 옆에서 작은 딸이 '나 중국 싫어.'하고 언니 위로를 해주기에 중국이라 그런 게 아니라고.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토닥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처음 일정으로 들른 곳이 내몽고 박물관. 일산의 킨텍스를 연상시키는 곳에 그다지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내몽골에 공룡이 많이 살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증명해주는 다양한 공룡뼈들이 신기하고 볼 만했다. 특히 가장 큰 공룡 유물은 거의 대부분의 뼈가 실제로 발굴된 것으로 만들어졌단다.
점심을 먹고 시라무런 초원으로 향했다. 약 2시간 여를 버스를 타고 달리는 데 도중에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내몽골은 워낙 비가 귀한 초원지대라 비 오는 날 오는 손님은 복을 가지고 오는 손님이라며 더 환대하는 풍습이 있단다. 우리가 복 있는 손님이라는 것은 좋았지만 혹시나 비 때문에 승마체험을 하지 못할까 싶어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우리가 머물 숙소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숙소를 배정받아 몽고 빠오로 가는 길에 양들이 먼저 길을 차지하고 있다. 만화에서 나오는 하얗고 털이 굽슬굽슬한 예쁜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초원스런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초원에서는 천막으로 만든 몽골 전통에 좀 더 가까운 몽고 빠오(게르)에서 잠을 잤다. 널빤지 같은 것을 깐 바닥 위 침낭에 누우니 하늘에서 후두두두둑 비처럼 벌레들이 마구 쏟아져서 얼굴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맨 후 얼른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하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내 침낭에 수북이 쌓여있던 온갖 벌레들의 시체 때문에 참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몽고 빠오가 시멘트로 지어져서 벌레들의 습격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밤이 되면 뚝 떨어지는 온도 때문에 침대 위에 깔 전기매트가 꼭 필요할 듯하다.
초원에서 누구나 한 번은 꿈꿔봤을 말타기. 숙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 명 씩 말에 올라타 초원 한 바퀴를 약 2시간에 걸쳐 돌아오는 승마체험을 했다. 중간에 내몽골 특산품(주로 우유로 만든 과자와 사탕 비슷한 것들)을 파는 곳에 들러 시식도 하고 사기도 했다.(나중에 보니 숙소에서도 팔고 있었고 다른 지역에 갔을 때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팔고 있더라.) 그런데 이 승마체험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많이 달랐다. 제주도에서 말을 탔을 때도 어느 코스에 이르면 좀 속력을 내서 달리는 느낌이 들어 짜릿했었는데 여긴 전혀 아니다. 쭉 줄 맞춰서 직원들이 이끄는 대로 터덜터덜 걷는 게 다다. 하다 못해 '말님 산책하시는 데 우리가 모래주머니가 된 느낌'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 일행이 좀 많아서 안전상의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운 말타기였다.
내몽골 음식이 입에 안 맞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일행들 모두 음식들을 많이 준비해왔다. 그래서 매 끼니마다 컵라면과 가지고 온 밑반찬들을 함께 먹어서 음식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특식으로 양고기를 주문하면 저렇게 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나누는 의식?을 하면서 양고기를 나누어 준다. 중국인들은 정말 좋아하던데 우리는 그다지... 식사를 끝내고 나니 숙소에서 기마쑈, 몽골 전통씨름, 캠프파이어 등의 일정을 진행했다. 그런데 말 태워주던 직원이 기마쑈도 하고 씨름도 하고 캠프파이어도 진행한다. 진정한 엔터테이너들이다.
해가 질 무렵부터가 초원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때인 것 같다. 지평선 위로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에 하나 둘 나타나는 별. 그러다 밤이 되면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다 못해 땅으로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그 밤하늘의 아름다움은 눈으로밖에 담을 수 없다.
내몽골 여행은 언제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은 여행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짜증스러운 일들과 스트레스들이 다 무색할 정도로. 자연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