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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Jun 20. 2016

언젠간 다 먹고 말테야!

나의 중국 맥주 도전기

     큰 아이가 초등학교 때였던가 학교서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나 보다. 그때 딸아이가 그려온 그림은 엄마와 커다란 소파, 그리고 커피와 맥주였다. 그땐 조금, 아주 쪼금 다른 집 엄마와는 다른 내 모습이 부끄럽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어쨌든 그것이 내 모습인 걸. 그 후부터는 애들을 세뇌시키기 시작했다. 엄마가 다른 집 엄마들처럼 몇 백만 원짜리 가방에 목매는 것도 아니고, 비싼 브랜드 화장품만 얼굴에 바르는 것도 아니고, 브랜드 옷이나 신발을 고집하는 것도 아닌 그저 커피와 맥주 조금 좋아하는 것뿐, 그 얼마나 저렴한 취향이냐고. 다행히 착한 아이들은 이해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하는 척하는 것인지, 이제는 나중에 자기들이 커서 가족 모임 하면 음식 값보다 술값이 더 많이 나올 가족이라고 걱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의 첫 번째 맥주 양조통, 무조건 큰 걸로 장만했던 거였다. 한 번에 23L를 만들 수 있다.
 조금 꾀가 나 장만한 두 번째 양조통. 따로 병입하는 수고 없이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가 따라 마실 수 있다. 캠핑갈 때 가져가면 완전 좋음!

       맥주를 사 마시다 못해 스스로 담가 마시기까지 하던 차에 중국행이 결정되자 그때부터는 칭다오 맥주를 끊었다. '앞으로 주야장천 마실 수 있는 맥주, 여기서 더 마실 수는 없다. 앞으로 마시기 힘든 다른 맥주들이나 실컷 마셔 보자!' 참 나다운 계획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에 온 이후 열심히 여러 맥주를 마셔보고 있다.^^

    중국(아니 아직은 북경)에는 참 다양한 맥주가 있고 가격대도 다양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맥주의 가격의 매우 싸다. 그러나 아직 물가의 개념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아서 가끔 실수도 한다. 마트에 갔더니 처음 본 새로운 맥주가 있길래 가격 확인도 안 하고 비싸 봐야 맥주지 하고 카트에 넣었다. 나중에 계산대에서 계산하는데 결제 금액이 생각했던 가격의 3배 이상이라 도대체 뭐지 싶었다. 말이 안 통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계산 끝내고 혼자 조용히 영수증을 살펴보니 내가 산 맥주가 무려 89원. 6캔이니 한 캔에 무려 15원 정도 하는 것이었다.(나머지 장 본 금액이 45원이었다. T.T)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이들에게 엄청 우울해하며 이 얘기를 했더니 15원이면 한국돈 2,700원 정도 아니냐며, 그 정도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라며 위로해 주는 딸들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그 이후 '솔라나'라는 여주 아울렛을 떠올리게 하는 동네 '렛츠 버거'라는 맛집에서 38원짜리 칭다오 맥주를 먹고는 이 우울한 기억이 싹 지워졌다. 마트서 3원하는 맥주인데..... 큰 아픔으로 그 전의 작은 아픔을 지워버리는 충격 요법?)


1. 옌징 피지우(연경 맥주)

     북경의 옛 이름이 연경이다. 그래서 북경에 오면 연경 맥주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연경 맥주. 한 캔에 2~3원으로 살 수 있어 물보다 싸다. 그래서 마트에 가장 많이 깔려 있다. 그다지 특별한 맛이 있어서 마신다기보다는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서 마시는 음료수 같은 느낌. 하긴 중국사람들은 맥주든 음료수든 차가운 것을 안 마셔서 꼭 달라고 할 때는 '삥더(차가운 것)'룰 외쳐야지만 차가운 걸 준다. 연경 맥주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두 번째 사진은 이름도 너무나 어려운 위엔지안바이피(원장백비) 원래 즙이 하얀 맥주?  아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맛은 수제 맥주에 가장 가깝다. 밀맥주(바이스비어) 중에 효모를 여과하지 않은 헤퍼바이젠에 해당하는 맛. 내가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수제 맥주 맛이기는 하지만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맛에 한국에 있을 때 한 동안 자주 갔던 상수동 수제 맥주집 케그비가 몹시도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여전히 나를 기억하실까?^^

연경 맥주 종류. 노란색은 안 먹어 봤는데, 도전~~~!


2. 칭다오 맥주

     양꼬치 앤 칭다오! 우~쥬 맥주? 중국하면 떠올려지는 맥주. 그런데 내가 원래 그닥 맛의 차이를 세심하게 감별해내는 미식가가 아닌 탓인지, 아님 이곳에 와서 많이 마신 탓인지, 이젠 중국 맥주 맛이 다 똑같다. 한국서 양꼬치와 함께 먹을 땐 분명히 '이건 칭다오 맛이야'하며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는데...... 어쨌든 요즘 내가 동네 마트에서 박스 째로 대 놓고 먹는 맥주이다. 아래 맥주 세 캔은 마트 같지도 않았던 롯데 마트가 새롭게 단장해서 재오픈한다기에 놀러 갔다가 데리고 온 칭다오 맥주 삼총사. 화이트 맥주는 나를 우울함에 빠지게 만들었던 비싼 연경 맥주 맛과 비슷, 흑맥주는 흑맥주와 그냥 맥주의 중간 정도의 맛? 가장 오른쪽은 칭다오 순생(츈성), 칭다오에서 Draft 라인으로 만든 맥주다. 난 이게 제일 맛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맥주는 칭다오의 고급 라인인 오고특. 학원 선생님이 마트로 실습 갔을 때 강력 추천해주신 맥주라 사서 먹어 봤는데 내 입맛에는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 뒤로는 패스.


3. 하얼빈 맥주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유명한 얼음의 도시 하얼빈. 그곳에서 나는 맥주 하얼빈 맥주. 북경 맥주인 연경 맥주 외에 칭다오와 이 하얼빈이 북경서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연경 맥주와 함께 가격이 가장 싸기도 하고. 동네 마트서 배달을 시켜도 작은 캔 24개 한 박스에 65원이면 된다. 렛츠 버거의 맥주 2병이면 한 박스 사고도 돈이 남는다.(여기서는 10원, 20원은 엄청 아까운데 100원이 넘어가면 별 거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된다. 아직 내가 여기 경제 감각이 안 생겨서 인지, 워낙 작은 것에 벌벌 떨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100원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맥주 한 박스를 시켜서 먹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 첫 번째 사진은 마트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노란색 하얼빈(소맥왕), 가장 흔한 만큼 그냥 평범한 중국 맥주 맛. 다음 사진은 하얼빈 맥주 라인업. 아마 오른쪽부터 왼쪽까지의 순서로 상위 라인인 것 같다. 파란색 하얼빈(빙순)은 마셔봤을 때 왠지 싱거웠다. 그다음 초록색(청상)과 빨간색(특제초간)은 아직 안 먹어봤는데 노란색보다 맛있다니 꼭 한 번 먹어볼 테다.


     그 외 식당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는 설화 맥주. 노란색 병이랑 초록색 캔이랑 똑같은 맛이다. 파란색 캔도 그다지 특별한 맛은 아닌 평범한 맥주 맛. 황금색 캔은 생맥주인 것 같은데 아직 안 먹어 봤다. 먹어야 할 맥주 하나 더 추가!


     여기 맥주 집 가면 행복한 이유 하나. 아사히 생맥주가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싸다는 것. 아사히 생맥주 3000cc의 저 위용을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또 하나 특별한 맥주가 태산 맥주. 가장 수제 맥주 맛에 가까운 기성 제품이랄까? 이 맥주는 유효기간이 일주일밖에 안 된단다. 신랑 지인 중 한 분이 이 맥주를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는데(중국에서는 술도 인터넷 배달이 된단다. 아싸!) 유효기간이 그렇게 짧은 줄 모르고 한 박스를 주문했단다. 배달 온 후 일주일이라는 유효기간을 확인하고는 며칠 뒤 한국을 들어갈 일이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주위 사람들에게 다 나눠 주고 한국에 들어가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


     그러나 지금 내 몸이 탈이 났다. 그동안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대서인가? 아님 한국서 온 슬픈 소식에 마음이 아파서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맥주 도전기가 조금은 차질을 빚고 있는 중이다. 얼른 털고 일어나 아직 못 먹어 본 수많은 맥주들을 조만간 다 마셔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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