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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Jun 28. 2016

마흔 넘어 쉰 살 바라보기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지금, 김선경 엮음

     대학 새내기 시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서른 살은 내 청춘도 사랑도 다 끝나 버리는  왠지 서글프고 황량한(?) 그런 나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나이 서른은 아이 둘을 낳고 펑퍼짐해진 몸매로 학교 다니라 애들 키우느라(뭐 거의 반은 친정의 도움을 받았다마는....) 좀처럼 취미가 생기지 않는 집안일 하느라 청춘이고 사랑이고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른에 들어설 때 크든 작든 많은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는 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삼십 대 후반,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의 젊음은 이제 정말 끝인가? 정말 이대로 끝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에 무서웠다. 아이들이 좀 자라 이제 여유가 생긴 탓이었을까? 내가 선택한 직업이, 내가 선택한 삶이 너무나 지루하고 평범한 게 무척이나 싫었다. 어렸을 적 꿈이었던 '국어교사'란 직업을 내가 앞으로도 정말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아니  그 직업이 정말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었을까? 근본적인 물음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맨날 입에 '다른 직업을 찾고 싶다'는 말을 달고 다녔고 그래서 새해 시작마다 울 신랑은 나를 다독이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이란 게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 직업을 다 팽개쳐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헤매는 사이 마흔을 넘어섰다. 이제는 그런 생각에서 좀 벗어나서 여유로워졌달까? 아님 고민의 시기를, 새로운 삶을 계획할 시기를 놓쳐버렸달까? 어쨌든 좀 지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른에 하지 못하고 넘겼던 고민들이 내 나이 마흔에 몰려왔었구나... 

    이제 겨우 서른, 마흔의 고비를 넘어섰는데 앞으로 다가올 쉰, 예순, 일흔의 나이는 어떻게 넘어서야 하나?  그때의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즐기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모든 것이 지루하고 답답할 듯한 그 나이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 일본 시인 이싸의 하이쿠, p22

    사실 이 책을 집어 든 것이 이 번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에도 한 번 읽으려고 시도를 했었다. 3년 전이면 갓 마흔에 들어선 나이. 그래서였을까? 그때는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 생각했는지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리고 말았었다. 그러다 이번에 큰 기대를 안고 찾아간 왕징 작은 도서관에서 이 책이 눈에 뜨이기에 다시 잡았다.  3년이란 시간이 이 책을 다시 읽게 했고, 느끼게 했다. 역시 책과 사람도 만나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는 거다.^^


나이가 들면 좋은 점은 생활이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책임도 의무도 줄어든다. 시간이 늘어나고 인내심이 많아지고 감정이 섬세해진다.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불어난 시간에 하나씩 해 보는 재미를 누리는 것도 좋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거나 악기를 배워도 좋으리라. 더디 진도가 나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칭찬해 주리라.  나이가 들면 긴 시간이 드는 일을 찾아 제대로 시작해 보라. 잘 안 돼도, 서툴러도 시간이 넉넉하므로 '나 자신'을 기다려 줄 수 있다.           --- 뭐가 그리 억울한가,  p21
나이가 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노년의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다. 고독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인간을 병들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꼭 외로움이겠는가? 혼자기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고 외로워서 인생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다. 혼자 있는 게 두렵고, 외로움이 무섭다면 외롭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이 당연한 이치를 회피한 채 '나는 왜 외로울까. 인생을 헛살았나'하고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이야 불행을 자초하는 것인지 모른다.                                            ---  왜 외롭다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p30

     중국어 학원을 다닐 때  소위 '왕언니'라 불렸던 분이 계시다. 쌍둥이를 키우는 따님이 남편 직장 때문에 중국에 오게 되자 따님만 보낼 수 없어 중국까지 따라오셨다는 분이셨다. 그분을 보면 그  연세에 아무리 딸 때문이라지만 중국까지 오신 것도, 중국어를 배우시겠다고 매일 학원 제일 앞자리에 앉아 계신 모습도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맞다. 아무도 그분이 중국어 진도가 느리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격려했고, 존경스러워했으며 응원했었다. 아, 이런 것이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이구나. 이 책에서는 이렇게 나이 들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알아야 하며 나쁜 점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좋은 점은 맘껏 누리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혼자 외롭다고 투덜댈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람들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치를 '나이가 들어서 체면 상 어떻게?'라는 생각으로 무시하곤  내가 인생을 헛살았나 우울해하기 십상이다. 하긴 인간의 외로움이야 젊으나 늙으나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 함께 하는 것이거늘. 이 책 내용대로라면 늙으면 시간이 많으니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도 또한 나이 듦이 주는 장점이리라.


가끔 텔레비전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노인이나 턱걸이 수십 개를 거뜬히 해내는 할아버지를 본다. 붉은 립스틱을 바른 할머니는 몸에 달라붙는 에어로빅 복을 입고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고 두 다리를 높이 들어 보이며 유연성을 보여준다. 이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다. 평균 노인의 모습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문제는 방송에서 누구든 노력만 하면 이런 젊음을 쟁취할 수 있다고, 그렇지 못한 것은 당신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은근히 조장한다는 점이다. 과연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 나이 드는 게 두렵기만 한 사람들에게, p89

      방송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런 것일 테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 방송에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특출 나고 기이한, 소위 방송 거리가 될 만한 특별한 사례일 텐데, 방송은 그런 점은 쏙 빼버린다. 이런 사례가 좋고 옳은 사례이며 지금 그렇지 않은 당신은 뭔가 나쁘고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래서 방송 사례처럼 되기 위해 무언가를 사고 무언가를 하도록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제 그런 방송은 쿨하게 지나치자. 방송에 나오는 이쁘고 늘씬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 '아주 특이한 사람들이구나, 저렇게 살려면 피곤하겠구나' 하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자. 우리는 그럴 수 있는 너그러운 나이(^^)이지 않은가?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저자의 삶의 자세가 마음에 들어왔다.

1.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욕구를 받아들인다.
2. 나는 내가 나인 것이 좋다.
3. 나는 내 몸과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
4. 나는 다른 사람들을 나처럼 소중하게 대한다.
5. 나의 건강 계획을 세운다.
6. 가장 잘 맺고 있는 관계와 안 풀리는 관계의 원인을 알고 있다.
7. 나는 나의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다.
8.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9. 나는 돈 관리를 잘하고 있다.            ---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꼭 익혀야 할 삶의 자세, p261


인생은 드넓은 바다다. 내가 젊은 날 알고 있던 고기떼가 몰려다니는 해역은 해류나 환경의 영향으로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또 나만의 고기 잡는 방식도 오늘날엔 비생산적일 수도 있다. 거친 바다로 새롭게 고기잡이를 나온 젊은 어부들에게 늙은 어부가 들려줄 것은 생생한 바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이야기에서 젊은이들이 보석 같은 삶의 노하우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그의 행운일 따름이다.                          --- 젊은이를 가르치려 들지 마라, p115
생각해 보라. 아이들이 어릴 때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얼마나 재롱을 떨었던가. 밉상 부리고 미운 짓 하면 회초리밖에 돌아올 것이 없다는 걸 아이들은 아주 잘 아는 것이다. 이제 거꾸로 부모들이 성장한 자녀들에게 재롱을 떨어야 한다. 치사하다고? 자녀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그 정도 치사함은 참을 만하지 않은가.
다만 재롱을 점잖게 떨어야 한다. 재롱이 아닌 것처럼 재롱을 부리라는 것이다. 권위나 위엄은 버리고 서운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 자주 웃고 나의 자잘한 고통과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제나 명령이 아닌 부탁으로 대화를 풀어가는 것이다. 거기에 젊어서 하지 않던 귀여운 짓을 가끔 하면 더 좋다.
"아들아, 아버지 용돈 만 원만 주련?"         ---- 옛날에 내가 라며 자랑을 늘어놓기 바쁜 당신에게, p117

    새내기 교사 시절을 거쳐 중견교사가 되었으면서도 나는 아직도 새내기 시절 그대로라 생각하고 지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하고 실감하게 되었다. 어느 때인가부터 나보다 윗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에 분노하기보다 나보다 아랫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에 더 분개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였다.  어느덧 교사라는 직업에 익숙해져 새로운 것들에 대해 낯설어하고 틀에 맞추려고 하고 있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윗글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앞으로 알게 모르게 하게 될 내 잔소리가 그들의 고기 잡는 법을 제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바다의 이야기일 뿐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덧붙여 나한테는 지금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귀여움과 애교를 이제부터 준비해야 하겠다.(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늙어서도 행복하게 딸들에게 용돈을 타 내기 위해서 말이다.^^


또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부모님의 기일이 10일 상간으로 있기 때문에 부모를 회상하는 '메모리얼 주간'으로 정해 다례와 조촐한 식사 모임을 가진다. 다들 먹고살기도 바쁜 일 년에 네댓 번 제사를 지내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해서다. 제사 때문에 수많은 가족 불화가 일어난다. 대가족제에서 많은 일손으로 치러졌던 제사를 오늘날 한 두 명의 며느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제사의 본뜻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산 사람을 힘들게 하는 제사 차라리 지내지 않음만 못하다.    --- 따로 또 같이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가훈, p213

     부부와 결혼한 아들 내외와 딸 내외까지 삼대가 같이 산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아들 딸은 그렇다 쳐도 며느리와 사위는 참 고역이겠구나 싶었다.  다른 것은 참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어른인 것 같은데, 이런 점에선 아직.... 하지만 책을 읽으며 며느리에게 제일 먼저 가르친 것이 거절하는 법이었다는 것, 같이 살고는 있지만 누구든 다른 집에 방문하려면 미리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 서로 알릴 내용은 이메일을 통해서만  전한다는 것 등 이 집 만의 규칙을  알게 되면서 이렇게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특히나 아무리 맛있는 먹을거리를 장만했다고 하더라도 이메일을 통해서 필요한 사람들만 와서 가져가라고 알리고는 끝이라는 내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맛있는 것을 생각해서 장만해주시는 어른들이 보시기엔 괘씸하고 서러운 얘기일 줄 몰라도 필요 없는 음식물을 갑자기 받아야 할 때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시댁은 종갓집이 아니다. 다행히도 난 제사 당일 큰 집에 가서 단순한 제사상차림과 설거지만 도와드리면 끝인 며느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종갓집 두 며느리들이 해야 하는 그 많은 음식 준비들이며(사실 다 먹지도 못하고 싸가지고 가라,  필요없다, 실랑이 뒤에 남은 음식들 처리하는 것도 고역이다), 또 그 힘듦에서 살짝 벗어났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내가 당해야 했던 형님 시집살이이며.... 그 과정에서 겪는 모든 것들이 며느리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에는 꽤 유쾌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노동들이었다. 어서 많은 나이 든 사람들이 저자와 같은 생각을 가져서 더 이상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왜 해야 하는지 하면서도 의문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좋겠다.  


50세가 되면 5년 단위로 인생을 계획하라. 50세는 아직 '청춘'이지만 머잖아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할 것이다. 정년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죽음을 진지하게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중략> 
젊었을 때는 큰 목표를 중심으로 인생을 설계했다면, 50세 이후 시간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딱 5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이 좀 더 명확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 5년이 지나면, 또 5년의 계획을 세우고, 다시 2년, 1년 단위로 인생 계획, 하루 계획을 촘촘히 세워 보라. 계획이 거창한 무엇은 아니다. '뭐하지?'라고 심심하게 시간을 써 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 인생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막막하다는 당신에게,  p245
첫째,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다양하게 그리고 여러 번 생각해 보라. 딱 한 가지만 정해서 그것을 꼭 하겠다고 오랫동안 벼르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둘째,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교적인 일과 동시에 혼자 할 일도 알아보라.
셋째,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을 찾으라. 그래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공동으로 하는 일은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적다.
넷째, 가능하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더욱 좋다. 
다섯째,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하여 주위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어떤 일을 시작하든 그 일을 하면서 체력이 조금씩 저하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 어떤 일이든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p274

     50세가 되기도 전에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하는 대부분의 회사원들도, 교사란 직업 때문에 거기서 약간 비껴설 수 있는 나 자신도, 어쨌든 50세라는 나이는 뭔가 지금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계획하고 달라질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5년만 산다면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해야 할 것을 계획하되, 하고 싶은 일들을 다양하게 생각해 볼 것.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의 체력이 조금씩 저하될 것까지 미리 계획에 넣을 것. 참으로 현실적인 조언이다. 인생의 황금기가 지났다고 서글퍼하지 말고 자신의 나이 때에서 누릴 수 있는 황금기를 찾으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일 것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에 따라 언제든 인생의 황금기는 찾아오는 것이므로.


노인이 되어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내게 필요한 것 내가 살고 일하고 느끼는 것이 내 나이에 맞는지 알아내는 감각이다. 노인이라고 해서 갑자기 호호 할아버지를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또한 젊은이들을 따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나이만큼 늙었다. 그뿐이다.     --- 안셀름 그륀, <노년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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