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히가시노 게이고,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벼르고 별러 찾아간 왕징 작은 도서관(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한국에 있던 우리 집 서재보다 못한 장서량에 실망을 크게 하고 돌아왔던. 하긴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도서관이 북경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것을...)과 신랑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이렇게 발품을 팔아 빌려 온 책을 쌓아놓으니 이만큼. 아, 한동안은 뭘 읽을까 걱정 안 해도 되는 좋은 시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아무 기대 없이 잡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너무 흥미롭고 독특해서 그 자리에서 읽어 버린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다. 그 소설이 SF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이 '라플라스의 마녀'는 추리소설의 룰을 따르고 있다.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가 '30년의 미스터리를 모조리 담아낸 역작'이라는 문구처럼 한 번 책을 잡으면 그다음이 궁금해서 계속 읽어야만 하는 잘 짜인 추리소설이다.
책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이런 유명한 작가도 자신의 글이 마음에 안 들고 재미없어 중간에 막 뒤집어 버리고 싶고 그러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이미 책 작업은 시작되어 있는 걸. 책작업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 졸이며 작가의 뒷 이야기를 기다렸겠지. 제발 작가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한 일본 평론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주제를 중심으로 6가지 키워드로 분류했단다. 그 키워드는 과학 및 의학, 가족 관계, SF적인 소도구 차용, 범죄의 심리 추구, 사랑의 비극, 복수의 고통 등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여섯 가지가 모두 집대성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단다. 글쎄...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고 그 인물들의 관계가 촘촘히 짜여 있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이다만 6가지 주제의 '집대성' 정도까지는...^^;
외국 소설을 읽을 때면 이름 때문에 너무나 헷갈려하는 초보 독서가라(특히나 일본 이름은 성과 이름의 구별이 잘 안 가서 더욱 어렵다...) 인물 관계도를 정리하면서 읽었다. 황화수소와 관련된 세 가지 사건이 서로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에 따라 서로 관련 있는 인물들이 엮이게 되고 그들의 행동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다기보다는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나'에 대한 깊은 고찰이 중요한 작품인 것 같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그것인 것 같고.
난 솔직히 범인들의 행동이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을 뿐이지, 정말 가슴을 부여잡을 만한 절절함?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동화된다기 보다는 그냥 한 발자국 멀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왠지 독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난 열심히 배워야 할 것 같고. 전에 읽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인물들과 함께 시시덕거리며 아파하다 자연스레 깨우쳤던 것을...
"당신은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지 그중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줄게. 대다수의 범용한 인간들은 아무런 진실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고. 그런 인간들을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았든 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아까 당신이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아니야.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요소야.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 p497
결국 내 결론은 이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미스터리를 집대성한 작품이라는 타이틀은 적확하진 않지만 흥미 있고 내용도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을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이 세상의 미래 말이야.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마도카는 침묵하고 있었다. 마음에 걸려서 다케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도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건요, 모르는 게 더 행복할걸요?" --- p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