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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Mar 17. 2016

집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야

798 예술구


     한동안 끊임없이 나오는 쓰레기들을 계속 갖다 버리고, 한편으로는 자고 먹기 위한 용품들은 계속 사 들이는 이중(?)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하려면 의사소통이 기본인데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니...... 아시는 분의 소개로 일을 도와주러 온 '아이(아주머니, 이모, 또는 보모라는 뜻으로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베이징에서는 이렇게 호칭함)'와도, 당장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간 마트에서도, 온갖 눈치를 봐 가며 손짓, 발짓, 숫자 쓰기는 물론, 때로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의사소통한다는 것이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임을 하루하루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집에서 밥을 할 수 있음(비록 인계받은 전기밥솥 상태가 안 좋아 매끼 냄비밥을 해야 하지만)에 감사하기도 하고, 또 오늘은 차가운 거실 바닥에 깔 마음에 드는 러그를 살 수 있었음에 행복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살기 위한 마트행만 왕복하다 처음으로 눈을 돌린 곳이 우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798 예술구이다.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정형돈 씨가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곳. 이곳은 원래 구소련과 독일의 기술로 세운 무기공장들이 있던 곳이었으나 냉전이 끝나고 공장들은 정부에 의해 외부로 옮겨지고 예술가들이 임대계약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생긴 사연과 분위기는,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문래동 예술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을 법한 무기공장과 예술, 철공소와 예술의 조합이 어둡고 황량하던 동네를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동네로 살아나게 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옛날에는 무기를 만들었을 공장, 무기나 무기재료를 실어나르는 도구였을 기차와 기차역이 지금은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 아트샵 등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전시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좀 자세히 알 수 있었다면 그 속속들이까지 볼 수 있었을 테지만 난 이제 1주 차 북경인. 내가 볼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거리를 둘러볼수록 전에 살던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이 생각났다. 한강 이남에서 나고 자란 내가 파주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된 계기 중 하나가 헤이리 예술 마을이었다. 신랑과 재미 삼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살 곳을 찾아보던 중 파주에 가보게 되었고 거기서 처음 간 곳이 파주출판단지 터였다.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이 김동수 가옥만 덩그러니 서 있던 정말 넓디넓기만 한 터였다. 그런데 그 넓은 터에 온갖 출판사가 들어오는 출판단지가 조성된다는 이야기에 책을 무척이나 좋아라 했던 신랑과 나는 '아, 우리가 살 곳은 여기구나!'하고 앞뒤 생각 안 하고 결정해버렸다. 그리고는 기분 좋아 드라이브에 나섰던 1차선 도로에서 튀어나온 예쁜 고라니가 파주에 살아야 할 2번째 이유가 되어버렸다. 아, 언제든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도시! 그리고 찾아간 곳이 헤이리 예술마을. '딸기가 좋아'가 막 조성되고 있었고 몇 안 되는 갤러리들은 너무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급스러운 갤러리들이 무료로 개방되어 너무나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고맙게 감상할 수 있었고 역시나 무료였던 '딸기가 좋아'에서 우리 딸들도 신나게 하루 종일 놀 수 있다는 게 세 번째 이유였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헤이리 예술마을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가더라도 평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들만 살짝 다녀온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곳에 가면 문화가 아니라 소비를 누리고 오는 것 같아서이다. 문화활동에서 오는 안락함, 여유를 느끼고 오기보다는 경제활동에서 느끼는 치열함,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거리도 안 쪽으로 들어갈수록 갤러리나 예술 관련 공간보다는 레스토랑, 카페가 점점 많아지더니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을 지나자 고급 외제차 전시장들이 속속들이 커다랗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에 맞춰 외제차들이 심심찮게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경적을 울려대며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었고.

     물론 이것은 다 1주 차 북경인의 눈에 비친 798 예술구의 모습이다. 그 안의 모습은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발돋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난 단지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일상생활의 기본을 다지는 것에 조금은 지쳐서 집을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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