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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Mar 14. 2016

오주캉두 우리 집

북경살이의 시작

     신랑의 북경 근무로 인해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럽게 준비된 우리 4 식구의 북경 살이.


     처음엔 갈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다가 한 달 여를 보내고 그다음엔 파주의 세간살이들을 처분하느라 한 달 여를 보내니 어느덧 출국일은 다가왔고 남은 일들을 처리하고 가까운 가족들과 인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던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김포공항 출국장이었다. 조금의  두려움, 그것보다는 더 큰 설렘을 가지고 도착한 북경공항에서부터 시작된 눈치로 의사소통하기도 별 무리 없이 통과하여 무사히 우리를 마중 나온 분들과 만나 우리 집까지 별 일없이 도착했다. 그래서 우리의 북경 입성은 예상보다 잘 이루어지나 싶었다.


   그러나 우리를 맞이하여 준 오주캉두의 우리 집은 말 그대로 돈 떼먹고 도망간 계주의 야반도주 상황이었다. 전에 살고 계시던 분이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덕에 그분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인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라 했었는데, 분명 사진으로 보았던 방이며 살림살이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었는데, 어찌나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셨는지 온갖 쓰레기와 살림살이가 한 몸으로 굴러다니고 있는 이 황망스런 풍경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 쓸 수 있는 살림살이이며 어떤 것이 버려야 하는 쓰레기란 말인가요? 중국 들어오기 전부터 중국 아파트에 대해 워낙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에 좋은 집을 바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집 정리 상태가 이러리라고는 한 번도 예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나마 거실은 나은 편. 부엌은 열어보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여기서 어떻게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게다가 빨래까지... 중국 사람들은 집에서 밥을 안 해 먹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기는 맞나 보다. 하지만 여기 사신 분은 한국 분이셨는데 그분도 철저히 중국사람처럼 사셨던 듯. 여기저기 꾸역꾸역 나오는 식재료들의 유통기한들은 죄다  2014년도에서 2015년도에 멈춰 있다. '저, 이것도 저희 주시려고 남겨 두신 건 아니시겠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의 최고봉은 단연 냉장고였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냉장고를 열었다가 숨을 훅 들이쉬고는 황급히 냉장고를 닫고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같이 오신 한 분이 이 건 아무래도 혼자서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사람을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자기 집에 오는 아줌마를 소개하여주신다기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수밖에......


     '그래 다른 나라에 와서 새롭게 시작하는 첫날인데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쉽게 풀릴 수가 있겠어. 이 정도면 아주 쉽게 적응하고 있는 거야, 그럼.  여기 원래 사시던 분들이 예술하시던 분들이라 워낙 자유로운 영혼들이셔서 자유롭게 사셨을 거야. 어쩌면 나중에 나도 여기에 적응돼서 더 정신없이 살다 나갈 지 아무도 모를 일이야......'

     혼자 위로하며 잠 못 드는 북경 오주캉두 우리 집 첫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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