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가 Microsoft Flight Simulator라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VR(가상현실)로 런칭했다. 아직 PC용 버전이라 PC에 연결되는 VR 헤드셋이 필요한데 영상이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흔들림, 바람, 냄새, 그리고 맛까지 추가되면 ‘가상’이라는 단어가 그야말로 사족처럼 느껴질 것 같다.
진짜와 똑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여행용 시뮬레이션이 개발되어도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날까? 아마 그럴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시뮬레이션을 선호하게 되리라 본다. 미술관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사이즈로 그림을 느끼고 심지어 유화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면 뭐하러 귀찮게 공항까지 가서 그 긴 기다림을 견딘 후 좁아터진 비행기 좌석에 몸을 구겨 넣겠는가 말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달라진 날씨에 서둘러 옷을 껴입거나 갈아입어야 하고, 어리바리하게 두리번거리다 힘들게 택시나 버스를 잡아타고 숙소까지 찾아가야 하며, 시차로 며칠 동안 비몽사몽 골골대야 한다.
얼마 전 지인들과 다가온 크리스마스 계획에 대한 담소를 나누다 문득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대부분이 (코로나 때문에) 영화관은 못 가겠고 넷플릭스나 봐야겠다는 의견이었는데 문득 누군가 고요한 목소리로 이렇게 한탄했다.
“예전에는 늘 ‘주말의 명화’를 기다렸던 것 같은데... 요즘은 참 ‘기다림’이라는 게 없어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의 명화’는 1969년부터 2010년까지, 토요일 밤 10시쯤 방송되었던 MBC 영화 프로그램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스타워즈’ 혹은 ‘Home Alone’과 같은 영화를 보려고 아날로그 시계 바늘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쳐다봤던 경험, 중년의 나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그 당시 영화 시작 전에 나오던 MGM사 사자는 얼마나 장엄하고도 웅장하게 포효하던지... 그 장면이 나오면, 이제 곧 펼쳐질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콩콩’을 넘어 아주 ‘쿵쿵’ 뛰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정말 기다릴 필요가 없다. 버튼만 누르면 내 취향대로 자~알 정리된 영화 리스트가 나오고 난 그저 선택 버튼을 누르면 된다. 아니, 누를 필요도 없다. AI가 내 목소리에 다 알아서 해 준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볼 필요도 없고 길을 헤맬 염려도 없다. 인터넷 ‘예약’ 시스템은 또 얼마나 편리한가. ‘기다림’이 구닥다리가 된 세상이다.
그렇다면, ‘기다림’이란 뭘까? 우리는 기다리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기대감’이 아닐까.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 말이다. 영어로는 ‘expect,’ ‘밖으로’를 뜻하는 ‘ex’와 ‘보다’를 뜻하는 ‘spectare’가 그 어원이다. 즉, 밖을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연신 눈 덮인 창밖을 내다보는 꼬마의 마음, 호빵을 사 오실 아빠를 기다리며 현관문을 힐끔거리는 아이의 마음, 그리고 미리 그를 위한 커피를 시켜놓고 식을까 봐 백합처럼 하얀 티슈 한 장을 커피잔 위에 올려놓고는 식기 전에 그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연인의 마음이랄까? 그렇게 기대감은 우리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가슴 콩콩 설레게 하고 일곱 빛깔 무지개색 꿈을 꾸게 한다.
그런 기대감과 설렘, 꿈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편리함’이라는 거대한 명분 앞에서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 사실도 모른 채 많은 것들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오늘은 한번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를 기다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