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잔혹한가. 쉽게 잊혀 지는가. 그리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가.
코로나 발발 이전, 모 회사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였다. 5명이 수업을 들었는데 남자가 넷, 여자가 하나였다. 문득 담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담배는 한번 피우면 끊지를 못하는 거 같아요. 우리 남편을 보니 그렇더라구요.”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자 학생들이 뒤를 이었다.
“맞아요. 끊기 힘든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는 끊어야죠.”
“전 안 피워요.”
“전 끊었다 피웠다 합니다. 하하”
A군 차례가 되자 그는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했다.
“전 끊는 중이에요. 오늘로 2주째!”
학생들 틈에서 “와!” 하는 외마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부러운 마음에 어떻게 끊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쑥스러운 듯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 친구가 끊으라고 해서요.”
반사적으로 이미지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A군 SNS에 올라와 있는 그 사진!
다들 그 사진을 봤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A군을 쳐다봤다. 그의 사진 속 여자는 아이돌 ‘소녀시대’라고 해도 깜박 속을 정도로 여리여리하고 귀엽고 예뻤다.
그 후 그의 금연 활동은 우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금연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정말 대단해요.”
나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종종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럴 때면 그는 늘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생기 도는 하얀 피부에 행복한 눈빛을 반짝거리며...
‘생일 선물’이 화제로 떠올랐을 때, 그는 곧 다가올 여자 친구의 생일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신이 나서 얘기했다. 고급향수를 줄 거고 같이 대게 식당에 갈 거라고 했다. 대게는 그리 로맨틱하지 않지 않느냐고 물으니 여자 친구가 먹고 싶다고 했단다. 우리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소리쳤다.
"All the best! (파이팅!)"
그는 늘 자리를 지켰다. 회사 내에서 진행되는 영어 수업이라는 게 직장인 입장에서 ‘일’은 아니라서 느슨해지기 쉽다. ‘일’ 또는 ‘식사 약속’이라는 핑계로 수업을 빠지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그의 영어 실력은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고 나는 그가 내심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파이팅을 외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가 보이지 않았다. 위급한 회사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다음 시간에는 오겠지. 그러나 그는 다음 수업에도, 그다음 수업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학생에게 물어보니 그가 휴가를 썼다고 했다. 약 2주 정도가 지나서야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많이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원래도 마르고 껑충하게 키 큰 친구였는데,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고무나무같이 퍼석퍼석해 보였다. 사적으로 친한 사이가 아니니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애매해서 나는 그냥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흘러갔다.
그날, 우리가 무슨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열심히 영어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그들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치열하게 문장을 만들어 영어로 내게 대답했다. 분위기가 뜨거웠고 나도 내심 그들의 실력 향상에 신이 나 있었다. A군 차례가 되어 내가 뭔가를 물었고 A군이 대답했다. 내가 그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Isn't that your withdrawal symptom? (그거 혹시 금단 현상 아니에요?)”
“어? 담배 다시 피우는데...?”
갑자기 단어가 영어로 생각이 나지 않았던지, 그가 한국말로 이렇게 툭 내뱉었다. 우리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웅성웅성 그에게 되물었다.
“Oh my God."
"Why?"
"What happened?"
“What about your girlfriend?(여자 친구는 어쩌고?)"
마지막 질문에 그가 당황한 듯 다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헤어졌는데...?”
왁자지껄했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의 경우, 영어로 얘기하는 것의 장점이자 단점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는 거다. 머릿속에 떠오른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다시 ‘할 말과 안 할 말’이라는 필터로 걸러낼 시간이 도저히 없는 거다. 그걸 아는 나로서는 그가 무척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에게는 기억하고 싶지도, 꺼내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었을 텐데 내가 공연히 금연 얘기를 꺼내서 그만 ... 그에게 미안했다.
얼마나 힘들까.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사랑의 아픔에 눈물 펑펑 쏟았던 풋풋한 26살로 돌아갔다. 사랑했던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었다고 했고 그저 자기가 그 말을 해 주면 내가 좋아하는 것 같아 내게 사랑한다고 얘기했다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기필코 날 사랑하게 만들겠다는 깡이 없어서, 그가 보여 준 가벼움이 황망하고 어이없어서 그에게 이별을 고한 후, 이불을 뒤집어쓰고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던 그때... A군에게서 나는 그때의 나를 봤다.
SNS에 들어가니, A군의 대문 사진이 자기 사진으로 바뀐 게 눈에 들어왔다. 사적으로 친하지도 않고 ‘라떼는’ 식의 꼰대 라는 소리는 더더욱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새 나는 자판을 꾹꾹 독수리 타법으로 누르고 있었다. “I've been there. (저도 경험이 있어요)
그때 난 너무 울어서 며칠 출근도 못 했었네요.
This shall pass. (이 순간도 다 지나갈 거예요)
힘내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답은 의외로 빨랐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This shall pass, 기억할게요.”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눈빛은 밝아졌고 피부에는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는 서서히 건강미 넘치는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도 맞는 얘기였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더 잘 맞는 명언일 것 같다.
결국 다 지나간다. (This shall p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