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님 생일을 축하합니다.
아침에 휴대폰을 켜고 네이버에 접속하니 이런 문구가 떠억 하니 대문에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날짜를 확인하고는 바로 이해가 됐다. 네이버에 입력한 가짜 생일이 바로 오늘이었던 거다. 생일 축하용 홈쇼핑 쿠폰 문자와 SNS 메시지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을 들락날락하는 네이버에, 그것도 대문에 내 이름이 걸리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오늘만큼은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대문일 게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내 생일을 챙기는 것도, 남의 생일을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얼굴도 없는 사이버시스템이 나를 챙겨 주다니... 신통방통한 세상이다.
내가 입력한 데이터, 클릭 한 번이 모두 기록되는 세상이다. 쇼핑이나 영화 리스트를 내 취향대로 뽑아서 보여주는 것은 물론, AI 스피커 서비스의 활약상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머지않아 철저히 개인화된 나만의 AI 스피커가 나올 것 같다.
내 취향, 말투, 습관, 성향, 생활 전반까지 낱낱이 꿰뚫고 있어서, 기념일에는 내 카드를 긁어 서프라이즈 선물을 보내주고 우울할 때는 위로를 넘어 상담까지 해 주는 AI 비서 말이다. 상담을 해 주다 넌지시 내 심리 상태에 꼭 맞는 여행 상품을 넌지시 권할지도 모른다. 내 취향과 내 스케쥴에 딱 맞는 상품이니 나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거다. 아니, 오히려 고마워할지도 모르지. 내 재정 상태를 모두 알고 있는 똑똑한 이 비서는 그 여행이 내 수준을 살짝 넘어서는 여행이라고 귀띔은 해 줄 것이다. 하지만 ㅇㅇ 대출을 잠시만 이용하면 이러저러한 시기에는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도 건넬 것이다.
내가 커피를 내려 달라고 요구하면 비서는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며 내게 그 커피 회사 주식 가격이 이러저러하니 지금이 딱 사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소개한 후 사야만 하는 이유를 100가지 정도 홀로그램으로 나이나믹하게 보여줄 것이다. 커피 회사가 쓴 홍보비가 살짝 가미되어 있을 수 있으나 내가 그걸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구입한 커피 주식이 곤두박질치면 비서는 예의 그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일 것이다. 오늘은 스트레스 완화와 숙면을 도와주는 라벤더 향이 좋겠다고. 그러고는 공기 정화 시스템에 내장된 에어로졸을 거실 가득 분사한 후 나를 안마의자로 이끌 것이다. 친구나 연인도 직접 소개시켜 줄 거다. 통역 시스템이 있으니 언어가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와 취향, 성향이 동일한 사람을 만나면 내 스트레스 지수는 월등히 내려갈 테니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인구 감소를 염려하는 국가 기관에서는 잠시 나를 관리 대상 명단에서 제외할 것이다.
늘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권유를 받고, 시스템이 나 대신 모든 것을 해 주는 세상. 그 세상이 지겨워 잠시라도 홀로 있으려고 비서의 스위치를 꺼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미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내 책상 위 스탠드 전등까지 모두 날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일을 챙겨주는 네이버가 고마워서 진짜 생일을 입력해 놓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누군가가 챙겨주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는 건 편리하고도 효율적이겠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같은 음악, 같은 음식, 같은 친구, 같은 책... 하지만 성장은 결국 '익숙함' 이 아닌, '생경함'에서 오지 않던가.
나는 잘못 입력된 생일을 그냥 두기로 했다.
네이버가 명리학을 공부해 내게 '오늘의 사주'라도 읊어댈까봐 무서워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