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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두 아줌마 Jan 02. 2021

FLEX의 대가(대:까)?

최근 경기도 7급 공무원에 합격한 한 대학생이 일베에서 ‘미성년자 성관계 인증샷’, ‘장애인 비하’ 등의 게시물을 올리며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경기도지사가 철저히 조사하여 사실로 확인되면 임용 취소는 물론 법적 조치까지도 엄정하게 시행하겠다고 경고했는데, 사태가 심각해지자 당사자는 자신이 올렸던 글은 모두 ‘망상, 거짓 스토리’라며 급히 진화에 나섰다.      


게시물의 도덕성 문제는 논외로 치고, 그는 왜 그런 글들을 올렸을까? 평범한 글 하나둘 올리다 자극적일수록 조회 수가 많아진다는 걸 눈치챘을 거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이 자기 글에 관심 가져 준다는 사실이 좋았을 거고, 그래서 여기에까지 이르렀을 거다. 그가 올렸다는 공무원 합격 인증 사진도 같은 맥락이다. 자랑은 하고 싶은데 어디 가서 대놓고 하기는 힘드니,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소위 ‘자랑질’을 했던 거다. (뜬금없이 그의 ‘낮은 자존감’이 눈에 들어와 당황했다)     


요즘 유행하는, 부정적 의미에서의 ‘FLEX’도 같은 맥락 아닐까? 나는 이것도 가지고 있어. 저것도 가지고 있고. 이 정도로 화려하게 살아. 이렇게 비싼 술도 그냥 내다 버릴 수 있을 정도라고! 술만 버리는 줄 알아? 시계도 버려. 어때, 대단하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들 있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아닌, ‘어떤 사람인가,’‘어떤 존재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행동은 타인을 속일 수 있지만, 존재는 그럴 수가 없다는 통찰일 거다. 그 대학생은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가는 평소 올렸던 글들로 이미 전 국민이 다 알게 된 셈이다. 아무리 늑대가 왔다고 소리쳐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기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결국 내가 어떤 존재인지가 드러나게 된다. 속된 말로 ‘뽀록’이 나는 거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작은 한 부분인 ‘지금 이 순간’이 무서운 거고.      


어느 인터뷰에서, BTS가 입은 한복을 디자인한 한복 브랜드 `리을(ㄹ)`의 디자이너 김리을씨는 "평소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만약 내 생각이 비뚤어져 있다면 제품에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녹아들기 때문이라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옷을 만들고 싶다던 그가  정말 대견하고 멋져 보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아할 만한 젊은이이다.      


대학생의 닉네임은 ‘고대생’이었다. 그 대학 다니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그렇게 지었겠는가마는 거기에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저 그가 가진 간판만 보일 뿐. ‘나 자신’이 아닌 내가 가진 소유물에 모든 초점을 맞출 때, 사람의 ‘삶을 향한 고민’은 얄팍해지고 가벼워진다.      


얄궂게도 그 학생 덕분에(?) 고려대도 욕을 먹고 있는 모양인데, 그가 소유에 집중한 또 하나의 대가라고 해야 하나. 이래저래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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