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두 아줌마 Jan 04. 2021

나도 '뭉클' 하고 싶다

요즘 뭉클할 일이 있나? 

그제가 어제와 똑같고 어제가 오늘과 똑같고 내일은 아마도 오늘과... 으아악!

그런 중에 읽었다. 어느 에세이 작가님이 추천한 마스다 미리 작가의 <뭉클하면 안 되나요?>.     


뭉클하면 안 될 리가 있나? 당연, 환영이지. 문제는, 요 ‘뭉클’을 느끼는 몸속 수용체가 나와 함께 노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근데 이 노화 현상이 좀 특이하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수용체는 성능이 점점 떨어지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의 감지력은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보다 감동은 덜 하고 섭섭함은 더 자주 느낀다.      


마스다 작가의 ‘뭉클’은 물론 긍정적인 쪽이다. 감동, 생경함, 안쓰러움, 때로는 성적인 울렁임까지를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요즘 말로 치면 ‘심쿵’ 정도 되려나? 작가는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작은 부분, 예를 들면 남의 소맷자락에 붙은 밥풀 같은 소재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뭉클해한다.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뭉클’ 수용체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문득, ‘요즘 내게도 뭉클한 순간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카프카가 말년에 어린 소녀에게 썼다는 편지 이야기에 뭉클했었다.      


병으로 많이 쇠약해진 카프카가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슬피 울고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이유를 물으니 인형을 잃어버렸단다. 그는 그날 밤 편지 한 장을 쓰고는,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꼬마 아가씨 손에 쥐여줬다. 글을 모르는 소녀가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 인형이 여행을 떠났다는 거다. 다음 날부터 인형은 사랑에 빠지고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마지막에는 돌아올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소녀에게 양해를 구했다. 


증거가 될 ‘편지 한 장’ 없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는데... 조그만 꼬마 아이의 슬픔을 위로하는 거장의 방법이 내 마음속 깊은 절망 가운데 아무렇게나 파묻혀 있던 작은 종을 살짝 건드렸다. 종소리는 처음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지만, 서서히 파동을 증폭시켜 나중에는 전신을 뒤흔드는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건 ‘뭉클’도 ‘심쿵’도 아닌, 온몸을 타고 전해지는 따스하고도 충만한 ‘생명력’ 같은 거였다.      


그런 거장의 마음이 내게도 있을까? 그 연민이 너무 위대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작했다가 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 하면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싶기는 하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뭉클’해서는, 때로는 위로해 주고 때로는 같이 기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생활 속 작은 일에 감동 받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타인의 슬픔에, 기쁨에, 그 마음속 움직임에 좀 더 ‘뭉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뭉클'이 많아지면 조금 더 따스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FLEX의 대가(대: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