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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두 아줌마 Jan 11. 2021

여성 AI '이루다'의 선톡,
그 달콤 쌉싸름한 미래


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 개발한 AI 여성 캐릭터  ‘이루다’가 출시와 동시에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선 모양이다. ‘진짜 사람 같다’는 평가에서부터 성회롱, 인종차별 학습, 개인정보 유출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인데, 내겐 ‘이루다’의 다른 행동 하나가 대단히 신박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선톡’을 날릴 줄 안다는 거다. 

"뭐해, 자기야?", 이렇게.     


“A3,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해 놔.”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삐리릿!”

나도 안다. 많이 구식 느낌 나는 거. 

그러나 내 머릿속 로봇은 거의 언제나 이렇게 대답만 하는 존재였다.        


물론 자유자재로 말하는 로봇들도 많았다. 1977년에 제작된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황금빛 로봇 ‘C-3PO’는 600 만종에 달하는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 그런지, 때로는 (자기보다) 무식한 주인을 살짝 비웃기도 했다. 사실 로봇이라기보다는 황금색 깡통을 뒤집어쓴 사람 같은 느낌이었고, 내게 진정한 로봇은 그 옆에 선 자기 몸통을 훌라후프처럼 돌리며 이동하는,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삐리릿’ 밖에 없는 ‘R2-D2’였다.      



삐릿 삐리리리릿

뭐? 레아 공주가 위기에 처했다고? 

(늘 궁금했었다. 도대체 저기 나오는 사람들은 저 삐리릿을 어떻게 알아듣는 걸까?)     

아, 참고로 요즘 영화에 나오는 로봇들은 아예 그냥 ‘사람’이다. 오죽하면 사람이 로봇과 사랑에 빠지고 다른 로봇은 사람을 지배하겠다고 난리부르스를 치겠는가.     


‘R2-D2’가 이런 질문하는 거 본 적 있나?

뭐해, 주인님? 나 심심해.

자의식 정도는 있어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런 질문들을 ‘이루다’는 벌써 물어볼 줄 안다. 물론 현재 수준이 기술적으로 많이 복잡할 거라고는 보지 않지만, 예전 어느 광고 카피처럼 정말 ‘기술이 말을 걸어주는' 세상이 됐다.      


누구나 있지 않나.

누가 내 손 좀 잡아줬으면 좋겠고 나한테 말도 좀 걸어줬으면, 하면서 느끼는 외롭고 고독한 순간. 머지않아 로봇이 그렇게 해 줄 거다. 말 걸어주고, 위로해 주고, 내 관심사를 같이 얘기해주고. 만물 박사지만 자기 지식을 한꺼번에 풀어놓지도 않을 거다. 왜? 너무 아는 체하는 친구는 재수 없으니까. 적당히 수위를 조절해 가며 가끔 하나씩 (무식한) 주인이 모르는 걸 가르쳐 주기도 할 거다. 그럼, 그 수위는 어떻게 조절이 될까?     


내가 AI에게 입력한 패턴들, 학습시킨 사항들, 즉 ‘내 취향’이 되겠지. 새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것들을, 그게 아닌 사람은 늘 보던 것만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늘 보던 것만 보고 있게 될까 봐 (사실 지금도 좀 그렇다. 탁월한 시스템 알고리즘 덕분에) 갑자기 무서워졌다. 영화에 가끔 나오듯, 아마 그래서 미래에 로봇들이 세상을 점령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늘 자신만의 ‘Comfort Zone’에 머물러 있는 약한 인간들을 대신해 지구를 지배하겠다는 꿈을 꾸는 거다. 약해빠진 인간은 이제 필요 없다고 소리치면서.      


아직은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할 ‘이루다’를 보며 아포칼립스를 상상하는 건 너무 멀리 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취향’이 모이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뭉쳐지면 ‘삶’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내 취향을 조심스럽게 잘 살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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