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탐구 생활
여학생 - 근데 왜 날 좋아해? 난 얼굴도 별로고, 공부도 못하고, 또...
남학생 - (여학생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난 그냥 네 모습 그대로가 좋아.
크— 명대사다. 드라마에 너무 자주 등장해 좀 식상한 느낌이 있고 온몸에 닭살이 좀 올라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대사다. 사실, 드라마는 여기까지였다. 조금 더 얘기가 진행되면 어떻게 될까?
여학생 – 어떤 내 모습? (혀짤배기소리로) 얘.기.해.됴
남학생 – 넌 순수하고 따뜻하고 귀엽고 또...
학생, 거짓말하지 마! 여자애가 화장하면 엄청 예뻐지고 몸매도 끝내주기 때문이잖아, 라고 소리칠 뻔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의도하는 건 물론 그게 아니다. 남학생 같은 주인공이 나 같은 속물이면 스토리 자체가 성립 안 되는 구조다. 처음에는 여학생이 부러웠다. 아무 조건 없이 날 사랑해 준다잖아.
그런데 조금 후에는 남학생이 부러워졌다. 어떻게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여학생만의 ‘어떤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아챘던 걸까? 신기했다.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
남학생은 아무 이유 없다고 했지만, 난 뭔가가 있을 거라고 본다. 그녀가 그의 마음속 어딘가를 '톡' 하고 건드린 거다. 처음에는 그도 그게 뭔지 몰랐을 거고 살짝 당황스러운 정도였겠지만, 그 건드림이 몇 번 반복되면 그때는 깨닫게 된다. 외로워서 혹은 상처받아서 크게 생채기가 나 있는 자기 가슴에 여자아이가 작은 밴드를 계속 붙여주고 있었다는 걸. 물론 여자아이가 의식하면서 붙인 건 아니다. 가슴속에 지니고 있던 따스함과 배려가 자동반사적으로 작동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치료하고 있었을 뿐이다.
순수하고 따뜻한 사랑은 그래서 힘이 있다.
가까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햇살을 전해주고 상대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는 서서히 상처에 허덕이던 옛사람을 벗어던지게 된다. 새로운 자아(New Self)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다.
연애 감정은 불꽃 같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지나친 에너지 남용을 우리 몸이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인류애‘는 다르다. 그건 세상을 치유하고 때로는 나 자신까지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다.
여학생을 향해 인류애 운운하는 건 너무 멀리 간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학생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를 보고 ’꺅꺅‘ 소리치는 흠모가 아닌, 연고를 발라주는 따스함이었을 거다. 따뜻한 사람 옆에 있으면 그래서 행복해진다. 그/그녀가 뿜어내는 햇빛에 조금쯤은 자기 삶에 감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득 여학생이 눈물 나게 부러워졌다.
이제, 남학생의 얘기를 완성해 볼까.
남학생 – 넌 순수하고 따뜻하고 귀엽고 또... 날 '뭉클'하게 하거든.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고 싶을지도 모른다. 말로는 차마 못하겠지만.
"날 다시 태어나게 한 너는 내게 두 번째 엄마나 마찬가지야. 혹시 ’엄마‘ 라고 불러도 될까? 엄마!"
그래서 남자들이 엄마 닮은 여자랑 결혼한다는 얘기가 있는 건가? 헐... 이건 너무 멀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