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1초 이전의 과거로 가거나 1초 이후의 미래로 가는 순간
괴로움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현재에 있으면
괴로움이 없어지고 진정한 지혜가 생깁니다. (...)
나쁜 생각이 들면 불을 끄듯 생각을 멈춰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하다 보면 쉬워집니다.
by 전현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도대체 어떻게 불을 끄듯 생각을 멈추라는 걸까?
사람이 스위치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
니체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배 위에서 육지를 떠올리지 말라 했다.
뱃멀미는 육지를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아주 잠시 효과가 있다가도
금방 괴로움으로, 원망으로, 불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의 방법은 하수들이 쓸 수 있는 무술의 경지가 아닌 거다.
고도로 훈련된 고수 중의 고수들만 사용할 줄 안다는,
쿵푸팬더의 손가락 권법 같은 거더라.
그렇다면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평생 괴로움에 시달리다 죽어야 하는 건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쁜 생각을 멈추기는 힘들어도,
그걸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리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불길이 일기 시작할 때 소화기 거품으로 확 덮어버리는 것처럼
원망과 불안을 하얗게 잠재우는 거다.
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걸.
하지만 용서와 달관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현재의 나는 괴롭고 절박하다.
딱 심청이 같은 심정이다.
그녀도 얼마나 간절하면 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뛰어들었겠는가.
근데 그 소화기가 뭐냐고?
바로,
‘감사’다.
사실, 감사거리가 없는 사람은 없다.
신에게의 감사건, 삶에의 감사건, 아니면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감사건
우리는 늘 무언가를 빚지며 살고 있으니까.
현재에 대한 ‘감사’로
과거의 미움과 미래에의 불안을 덮어버릴 때,
30cm 두께로 마구마구 덮어버릴 때,
어쩌면 훗날 어느 순간엔
그런 아픔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뚱맞은 생각을 해봤다.
하기야 누가 아는가.
이 소화기 전법을 쓰다 보면,
자꾸자꾸 쓰다 보면,
언젠가 ‘고수’까지는 못돼도
고수 근처에라도 다다르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