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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두 아줌마 Feb 19. 2021

'오늘'


세상에서 제일 지긋지긋한 것은?     


청소와 빨래? 

상사 잔소리? 

학생이라면 수학 공부 정도 되지 않을까.     


내게도 하나 있다.

어제 같은 오늘.


누군가는 특별한 사고가 없었던 거니 얼마나 좋은 거냐고, 

감사할 일이라고 했다는데

내게 그런 '오늘'은

생각만으로도 지루하고 하품 나온다.

 

똑같아 보이는 매일에 지쳐갈 즈음, 

이우환 화백님의 이 글을 만났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쌀을 씻으며 혼자 노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머니께 “항상 똑같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어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어쩌면 똑같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쌀을 씻을 때마다 다르게 느낀단다. 

때로는 시원한 물이 생기를 주는 것 같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기분이 좋아지게 한단다. 쌀과 물과 내 손이 제대로 함께 움직일 때가 있고, 할아버지의 꾸지람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될 때도 있지.” (...) 

그것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동일성과 다름에 대한 근원적인 체험이었다.                                                                                                               

                                                                                         by 이우환, <타자와의 대화>에서          


역시 대가의 어머니는 다르다.

나도 매일 쌀을 씻지만,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맞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사실, 어제와 오늘은 공기의 흐름부터 다르다.     


아침 기온이 썰렁한 게 요즘은 다시 한겨울로 돌아간 느낌이다.

하기야 빙하가 녹고 있다니까 지구인들은 모두 종말을 향해 가는 중일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은 날마다 딱 하루씩 단축된다.   


어제와 오늘은 

신문 기사도 다르고,

주식시장도 다르고,

코로나 확진자 수도 다르고,

비트코인 가격도 다르고,

하다못해 빵값도 다르다 (파리바게뜨는 2/19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보면,

어제보다 머리가 조금 길었고

손톱은 깎아서 짧아졌고

아프던 발은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고

책상 위 먼지는 하얘진 것 같고

어제 아침에 열렸던 창밖 고드름이 사라졌다.


캡슐커피의 맛도 달라졌을 거다.

신선도가 하루치만큼 떨어졌을 거고

기계도 딱 그만큼 노후화되었을 거다. 

그렇다고 어제보다 맛이 없을 거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제보다 바깥공기가 따뜻하니 

조금 더 따땃한 커피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손에 든 커피가 어제와 같은 브랜드라고 해서,

다이어리에 적힌 스케줄이 어제와 매일반이라고 해서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닌 거다.

오늘은 글자 그대로 

새 날이다.


새로운 날이니까 

새롭게, 알차게 

잘 채워 넣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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