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풀어봅니다
“강아지 어딨어?”
학교에 다녀오니 키우던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파서 시름시름 앓던 터라, 얼른 약도 줘야 하는데...
“병원에 갖다 줬어.”
엄마가 고개를 돌린 채 차갑게 대답했다.
내 귀에는 정확히 ‘버.렸.어’로 들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울고불고 난리 치며 동물 병원으로 내달으니,
철창 속에 힘없이 앉아 있던 빼빼 마른 우리 이쁜이가
발딱 일어나 애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런 경우가 좀 있는지,
수의사가 아무 말 없이 강아지를 내게 건네줬다.
그날부터 강아지는 내 방에서 지냈다.
밥도 내가 먹였고
약도 내가 발라줬고
잠도 나랑 같이 잤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강아지가 죽었다는 거다.
같이 따라 울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프다고 버릴 때는 언제고, 울기는 왜 울어?
그 후, 슬퍼하는 엄마를 위해 다른 강아지를 들였고,
엄마가 돌아가셨고,
새로운 강아지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죽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아프다고, 곧 죽을 것 같다고,
10년 동안이나 키웠던 강아지를 내칠 수가 있어!
이제까지, 내 기억 속 엄마는 그렇게
‘참으로 인정머리 없는 여자’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는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다가오는 어둠을.
예고된 마지막을.
그 처절한 죽음의 냄새를.
겨우 생후 100일 된 아기를
병으로 떠나보낸 경험을 가진 엄마로서는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그 ‘상실의 가능성’이
못내 힘겨웠던 것은 아닐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 속으로,
그 참혹했던 절망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고
가슴 속에만 묻어 뒀던 아기 울음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섬뜩섬뜩 느껴지는 무서움에 당황하고
서늘하게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자식을 잃은 슬픔이 어땠을지
나는 상상조차 못 하겠다.
그런 절망을 견디며 살아갈 자신도 없다.
하지만 엄마는 견뎌야 했겠지.
누나인 난 살아있었으니까.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을 거고,
살아도 산 게 아니었겠다.
내가 있어 고맙다가도
내가 있어,
지옥 같았을 것 같다.
많이 늦었지만,
아주 많이 늦었지만,
이제 엄마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고.
너무 어려서
엄마 가슴속 아픔을 몰랐다고.
이제까지 오해해서
많이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때,
죽지 않고 버텨줘서
살아있어 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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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살아있음'이,
우리의 '살아있음'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