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라벨’은 ‘love & balance’의 줄임말로
사랑과 인생의 조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사랑관이란다.
한 마디로, 연애도 똑똑하게 하겠다는 거다.
내 시간을 지켜 가며 너를 만날 거고
내 스케줄을 방해하면 용서할 수 없다는 의미일 거다.
어쩐지 지구를 지키는 파워레인저의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러라벨’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베르테르는 자살하지 않았을 거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약을 마시지는 않았을텐데...
뭐, 문학을 들먹일 것도 없다.
성악가 조수미 씨는 서울대 수석 입학 후 연애하느라 낙제를 했고,
그래서 유학 갈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했었다.
조수미 씨는 연애했던 걸 후회했을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그랬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연애를 피할까?
그 답을 누가 알겠나.
사랑 때문에 너무 큰 상처를 입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참 미안하다.
인생이 참 그렇더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날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고
나와 마음이 통한 사람이라고 해서 내 맘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마음 아팠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를 후회하냐고?
후회한다. 바보 같았다고 생각하니까.
다시 돌아가면 사랑 안 할 거냐고?
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 하게 될 거 같다.
지금의 ‘나’라면 안 하겠지만
과거의 ‘나’라면 또 할 거 같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할 거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얼마 전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옆 좌석 어느 청년이 ‘자존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딱 그 단어만 들었다. 나머지는 카페 음악 소리 때문에 안 들렸다)
내가 어렸을 때는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인데
젊은 남자 입을 통해 들으니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요즘은 그런 시대인 모양이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나 여자나, ‘나’나 ‘너’나
다 ‘내가 소중하다’고 외치는 시대.
아니, 더 정확히는 ‘내가 소중하다’고 느끼고 싶은 시대.
단어 자체에는 나쁜 뜻이 전혀 없다.
나를 소중히 여김으로 너를 소중히 여기게 되고
그래야 모두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대단히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문제는 ‘자존’이 ‘이기’와 딱 등을 맞대고 있다는 거다.
내 시간을 침범하지 마. 우리 서로 딱 여기까지만, 하고 선을 긋는 거다.
그런데 그런 게 진짜 ‘사랑’인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네가 내 시간을 침범하는 사랑이다.
내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넌 내 시간을 밀고 들어와
어떤 때는 내 시간을 독차지해 버린다.
물론 강압은 없다. 다 내 자유의지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아니, 의지 따위도 없다. 그 일은 그냥 일어난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마리오가 그랬다.
“사랑에 빠졌어요.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언론에서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다고 했다.
디지털에 능하고 합리적인 세대.
그런 세대는 사랑도 합리적으로 하나?
거기에는 더 이상 불같은 사랑도, 뜨거운 낭비도 없는 건가?
그럼 이 세대는
어디에서 ‘성장’을 할까?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부모의 사랑, 자녀의 사랑, 선생님 사랑, 제자 사랑, 동료애, 인류애, 등등.
그 모든 사랑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거기에 ‘효율’은 없다는 것.
그래서 진정한 사랑에는 저울이 없다.
그냥 내가 더 주는 거다. 상대가 뭐라 하든 말든, 보답하든 말든.
그 사랑에, 새로운 세대는 저울을 쓰겠다고 한다.
이만큼이 내 사랑, 저만큼이 네 사랑.
저울은 항상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내가 더 사랑해도 네게 더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혹시 네가 더 사랑해도 내게 요구하지 마라.
마치, 사이에 금을 그어놓은 것만 같다.
넘어오면 끝이야,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며 존중받는 것.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고 지킴 받는 것.
인생에 도가 튼 고수들이나 하는, 아니 할 수 있는 행동들이다.
다들 그렇지 못하니 결혼해서도 피 터지게 싸우고
급기야 이혼까지 가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MZ 세대가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진정 무림의 고수들인가.
아니면 단지
이기적인 외톨이인가.
진짜 궁금하다.
안다.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세대가 얼마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사실, IMF 때도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때는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무서웠었다.
영원한 위기는 없더라.
단지,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뿐.
현재의 이 위기를
줄자로 재는 사랑이 아닌,
혼자가 아닌,
'진짜' 사랑을 하는 둘이
같이 손 꼭 붙잡고
이겨내면 좋겠다.
때로는 상처주고
때론 상처받으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그렇게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MZ 세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