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43만 달러(한화 약 5억 1,200만원)에 낙찰된 AI 화가작품, ‘에드몽드 벨라미’는 이 질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음울해 보이는 그림이다. 표정이 잘 보이지 않고 특히 얼굴의 코 근방이 뭉개진 느낌이다. 온통 검은 연기 속에 휘감겨 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를 태우고 있는 걸까? 혹시 그 자신? 그러기에는 그의 자세가 너무 부자연스럽다. 마치 데생을 처음 배운 학생의 그림처럼 얼굴과 몸의 위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렇다면 자기 신체의 일부를 태우고 있는 건가? 잘려나간 오른 손목 부근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구치고 손을 삼켜버린 불꽃은 하늘을 향해 거칠게 피어오른다. 마치 기다렸던 제물을 냉큼 받아먹는 불의 괴물처럼.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을 태우고 있나? 그를 배신하고 떠난 사랑했던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 아름다웠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들? 아니면 혹시... 그녀 자신? 이쯤 되면 공포영화다.
혹시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바라보는 인간의 진정한 모습일까? 늘 떠들썩하고 잰 체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넌 그냥 뼛속 깊이 고독한 ‘외톨이’가 아니냐고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나아가려 자신을 힘껏 채찍질해 보지만 결국, 자신 속 깊이 잠겨있던 외로움의 불꽃에 온몸을 휘감겨 검게 타 죽는 무력하고 허망한 존재 말이다.
아니다. AI는 인간이 넣어준 데이터로 작동하니, 이건 어쩌면 인간이 그린 인간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을 이루겠다고 달려왔지만 결국 그만큼의 소중한 것들을 파괴해 온 자신을 깨닫고 망연자실해 우두커니 허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 말이다. 자신이 망가뜨린 자연을, 관계를, 때로는 놓친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아무튼, AI가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 세계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창의성’은 인간 고유의 특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명제에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하기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어서 인간도 기존 것들을 비틀고 꼬고 다듬어 새로워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데이터 취급이 전문인 AI는 무언들 못할까 싶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 <아이, 로봇>의 AI 로봇 써니라면 창의성 듬뿍 담긴 예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윌 스마스와의 대화를 보면, 그는 예술의 경지를 넘어 이미 소크라테스급 철학자다.
그러니 무엇이 불가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