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서재>를 읽고

by 자두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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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서재가 있는가?


저자는 자신의 서재를 보여 주고, 서재를 구성하는 각 부분(책장과 책상, 책, 의자)을 설명한 다음, 이용자에 따른 서재의 역사적인 쓰임새와 그 의의를 지적하고는 최종적으로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서재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아닌 타인의 유용함을 파악하고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에서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밖에 없다.”(p.10)


우선 공예를 향한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타인’에 대해 알기 위해 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니... 이런 사람이 만든 책상과 책장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분명 최고의 쓰임새를 자랑하는 예술 작품일 것 같다. 작품과 상품 사이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물건 말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사치’가 아닌 ‘럭셔리’인 어떤 것.


누군가 애서가라면, 책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면, 그에 준하는 품격의 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건 사치가 아니라고. 럭셔리라고. 아니, 그는 그런 책장에 ‘럭셔리’라는 이름표를 붙이지도 않는다. 그의 입장에서 그런 책장은 너무 당연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게 당연할까? 청년 시절, 라면 박스를 책장으로 쓰고, 필름지가 벗겨진 고시원 책장에 감격하고, ‘대학을 가지 못한 가난한 이십 대가 맞닥뜨리게 되는 세상의 아득함’(p.84)을 노래했던 그에게, 언제부터 그런 물건들이 당연해 보였던 걸까?


그는 책장과 책상을 만드는 목수이다. 생활을 위하여 그는 그가 만든 것들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분명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닐 거다. 그의 고객들은 당연히 청춘 시절의 그가 아닐 거고. 서재에, 또는 책에 책장의 품격을 맞추려 하는, 소위 ‘가진 자들’이 다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들과 늘 대면하던 그는 자신의 어려웠던 청년 시절을 살짝 망각한 듯 보인다. 그의 말이 맞다. “소명을 거부하고 기억되기를 바라며 서 있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기억은 그들이 원했던 모습이 아니다.”(p.113)


그는 작고 단정한 미니멀리즘 책상이 ‘또 하나의 정답’(p.40)이기는 하나, “되도록 크고 넓은, 당신이 당신의 생각과 사물을 맘껏 늘어놓을 수 있는 크고 넓은 책상을 먼저 가져보라”(p46)고 충고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이미 그는 자본주의적 관점의 ‘정점’을 찍었다. 훌륭한 세일즈맨이다.


그가 청춘 시절 기억을 되살려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물건도 만들었으면 한다. 콩나물 값도 아끼는 우리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자본이 많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그런 튼튼하고 사람 냄새 나는 가구도 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

“공예의 목적은 기존의 가치를 받아들여 더 쓸모 있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데 있다”(p.11)고 했던가? 그가 기존의 가치를 받아들여, 그걸 깨고 더 확장해서 ‘사람이 행복한 가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1000만 원짜리 의자를 쓰고 7000원짜리 이발소에 다니는’(p.60) 문재인 대통령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사람이 먼저’라고.


그는 ‘고전’과 같은 심각한 책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세상을 바꾼 것은 ‘어렵고 무거운 사회과학 서적이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p.78) 라고 주장한다. 책을 너무 심각하고 어렵게 대하지 말라는 저자의 의견에는 공감하나, 깃털처럼 가볍기 쉬운 SNS가 세상을 바꾼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책에 대해 저자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느 정도는 그의 도서관에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도서관만이 나를 받아주는 공간이었으나 그만큼 나를 미치게 하는 공간도 없었다. 출소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언젠가 이 도서관을 벗어나 신촌이나 종로의 술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p.86)


그는 ‘죽는 날까지 한국의 도서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도서관의 책도 빌려 읽지 않을 것’(p.87)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서관을 지울 수는 없다’(p.88)고도 했다. 맞다. 망각하고 싶어도 망각할 수 없는 기억이 있는 법이다. 그런 기억은 차라리 몸의 ‘일부분’이다.


“당신만의 서재를 가져라. 명창정궤. 밝은 빛이 스며들고 정갈한 책상 하나로 이루어진 당신만의 서재를 가지는 일이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p.139)


그가 사람들에게 이런 서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의 혼과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긴, 돈이 많던 적던 누구나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래서 쓰는 사람에게 사랑과 행복을 주는 그런 가구, 그런 서재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런 서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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