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평범한 사람은 없다.”
모 자동차 회사의 카피인데 들을 때마다 묘하게 반발심이 이는 거다. 도대체 평범한 게 어때서? 평범한 나 자신에게 누군가 “네가 그러니까 이렇게...” 라며 삿대질을 하는 기분이랄까?
도대체 '평범'이라는 게 뭘까? 그게 뭐기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걸까?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 없이 보통이다’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뛰어나거나 뭔가 색달라야 하는가?
‘뛰어남’이 눈에 보이는 재능이나 성과를 의미한다면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색다름’은 어떨까?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우리의 ‘색다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다가 어느 교수의 글을 발견했다. ‘교육’에 관한 짧은 에세이였는데, ‘내가 중한 병에 걸린 이후에’라는 문장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날짜를 보니 10년 전 글이다. 문득 지금은 괜찮으신지 아닌지 궁금해져서 구글을 돌려봤는데 다행히 살아계셨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생존에 처음으로 안도해봤다. 그러다 갑자기 든 생각 하나.
아, 난 오늘도 살아있구나!
2020년 12월 현재까지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2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고, 2019년에는 한국에서만 30만 명 정도가 질병이나 사고, 자살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보통 광화문 광장을 꽉 채우면 26만 명 정도 되는데, 그보다 많은 인원이 작년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이다. 그 숫자에 내가 포함될 수도 있었는데... 우주 속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내가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 눈길을 끄는 글 하나가 있다.
페라리 핸들에 주먹 쾅쾅 치면서 흐느껴 울고 싶다.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창밖을 보면서 죽도록 슬퍼하고 싶다. (...)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가 화장실로 몰래 빠져나와서 입 틀어막고 끅끅 울다가 화장 고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들어가고 싶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자취 아파트에서 서울의 불빛은 너무 밝고 슬프다며 궁상떨고 싶다.
무슨 욕망이 이토록 자본주의적인가 싶어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입 틀어막고 끅끅’ 부분에서 눈이 멈췄다. 진짜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의 글이라기보다는 그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정도로 보인다. 비참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페라리를 꿈꾸지 않을 거다. ‘보통’을 꿈꾸지. 그런데 왜 가지고 싶은 걸 가졌는데 입을 틀어막는 것도 모자라 ‘끅끅 운다’고 까지 표현했을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왜 이다지도 우울하고 불행하고 슬플까? 그건 “원래부터 평범한 사람은 없어 그러니 더 노력해” 라는 충고 아닌 충고 때문은 아닐까.
도대체 ‘평범’이 왜 나쁜가? 타인과 똑같다는 느낌 때문일 거다. 튀고 싶어 환장한 현대인들은 ‘남과 똑같다’는 느낌에 안도를 느끼면서도 심하게 저항한다. 빅브라더 화면 앞에서 행진하는 붕어빵 같은 사람들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과 같으면 나의 상품성을 증명할 길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도 평범하고 나도 평범하면 그게 우리가 ‘똑같다’는 말인가? 너와 나는 콧구멍조차도 다르게 생겼는데 말이다. 게다가 겉보기에는 비슷해도 머릿속은 확연히 다르다. 누구는 입만 열면 값싼 욕망이 줄줄 흘러나오지만, 누구는 통찰력 넘치는 말도 거르고 걸러 100% 순도로 제련한 후에야 내뱉는다. 사실 동일한 틀에서 찍어낸 붕어빵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게 생겼다. 그러니 내가 남과 같지 않을 확률은 100%다.
사실, 내게도 ‘평범’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아마 자라면서 받아온 교육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유의 유무로 인하여 갈라지는 ‘특별’과 ‘평범’이라면 거부하고 싶다. 남을 짓밟는 게 아무렇지도 않고, 수고했다며 돈을 바닥에 내팽개쳐서 직원이 굳이 허리를 굽혀 돈을 주워가게 만드는 펜트하우스 회장님보다는 그냥 지금의 ‘나’이고 싶다. 펜트하우스를 갖고 있진 않지만,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쬐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 말이다. 우리에게는 ‘특별’과 ‘평범’의 다양한 기준이 필요하다.
원래, 평범한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