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 2017년 9월 출간 <동네 카페에서 반자본의 커피를 내리다>
* '카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중에서...
김상붕(金相朋) 철학 교수,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김상붕 교수는 철학과 교수이지만, 기업 민주화를 주창하는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기업의 주인은 소위 ‘오너’가 아니고 근로자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 지분을 절반 이상 가지고 있는 작은 회사의 오너를 대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고, 그가 언급하는 대상은 주로 지분이 분산되어 있는 대기업입니다. 우리나라 재벌의 폐해가 여럿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가장 비정상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오너의 회사 지분이 겨우 3~4%에 불과함에도 회사에서 왕처럼 군림하면서 모든 의사 결정을 독단적으로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권력을 휘두르면서 한편으로는 잘못된 경영의 결과에 대해 책임 지지 않는 이중성을 띠기도 합니다. 알량한 지분으로 권력은 과도하게 행사하면서 결과적 책임은 회피하는, 비정상의 대표적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한 방법이 학자를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데, 김상붕 교수는 조금 과격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의 주인은 근로자라는 것이고, 그에 따라 당연히 근로자도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흔히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 하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회사의 주인은 직원(근로자)이라 말하는 게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학생과 국민에 비해 근로자가 주인이라는 말은 자주 들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의식이 진보적인 경우에도 이에 대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대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보수는 주인인 오너가 회사를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반면, 진보는 근로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라고 주장하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진보라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대주주가 회사 주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고, 근로자가 주인으로서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는 인식도 일천한 편입니다. 그런 열악한 현실에서 김상붕 교수는 과감히 ‘기업의 주인은 근로자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김 교수가 처음 카페에 들렀을 때, 카페 입구에 적어놓은 게시물을 보고는 높은 관심과 흥미를 표했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런 대화로 이어졌고, 그 인연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는 ‘함께 생각해보는 기업 민주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회사 근로자이다 보니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고, 회를 거듭하면서 참여자의 수는 늘어났습니다. 초기에는 김 교수가 강의하듯 말하면 사람들은 그냥 듣는 편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질문이 늘어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프로그램은 점차 활력을 찾아갔습니다. 때론 김 교수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면서 점차 토론 프로그램의 제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김 교수에게 철학 교수이면서 왜 기업 민주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에 김 교수는, 철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회사는 법인으로서 인격이 부여된 존재이므로 이를 연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꼭 인격으로서가 아니더라도 회사란 결국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실체이므로 당연히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철학자로서 인격체가 부여된 기업을 탐구하는 것도 의미 있는 것이고, 기업 내부의 사람들과 그들의 행태를 연구하는 것 역시 철학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분야라는 판단입니다.
우리 사회가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을 통해 정치적인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기업 내부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민주화에 대한 진전이 미흡한 편입니다. 봉건적 권위주의가 여전히 살아있고 군사 문화적 파시즘이 여전히 생존하는 곳이 바로 기업입니다. 그런 기업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을 보냅니다. 집에서는 잠자는 시간이 긴 만큼, 어쩌면 인간이 가장 오래 생활하는 공간이 회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공간에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개인이 느끼는 만족감이나 행복감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성원간의 배려나 상호 존중으로 기업 문화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관리자나 경영자를 뽑는 문제, 중대한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의사 결정에서 근로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오너의 의사에 따라 회사의 중요 문제가 결정됩니다. 그런데도 정작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의사 결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근로자에게 피해가 돌아갑니다. 열심히 근무한 것밖에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기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도 급여가 깎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의사 결정을 잘못하거나 경영에 실패한 오너는 그대로 자리를 지킵니다. 이는 권한과 책임 측면에서도, 자연법적 상식 측면에서도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철학자로서 남의 분야라고 외면하지 않고, 경제와 기업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람의 문제, 시민 개개인의 삶의 문제로 파악하는 김상붕 교수의 주장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TS Café가 추구하는 가치라는 점에서 양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김 교수가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거시’라면, 카페는 ‘미시’라는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인 문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가치의 공유가 가능했으며, 프로그램도 가능했습니다. 김 교수가 바쁜 와중에도 가끔 시간을 할애해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고 참여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두는 ‘서로에게 벗(相朋)’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임원과 직원들이 서로에게 벗이 될 수 있는 기업, 그런 기업 문화가 보편이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