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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석 Sep 11. 2017

장하주 교수

사다리 걷어차기 

* 2017년 9월 출간 <동네 카페에서 반자본의 커피를 내리다>

* '카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중에서...


장하주(張下主) 교수, ‘사다리 걷어차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몰염치한 논리입니다. 이는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서, 우리나라가 하면 잘한 것이고 다른 나라가 하면 잘못한 거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나라의 대외 경제정책에서도 이렇듯 아전인수격 논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라 떠들며 선진국이 펼치는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에 대한 논리도 그에 해당합니다. 선진국은 후발국을 향해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만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라 강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진국의 앞선 기술과 자금력으로 후발국의 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상호 이익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편중의 잇속만 계산합니다.


국가 간 격차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자유무역을 외쳤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예전에 자기들에게 보호무역이 필요하다 싶을 땐, 그렇게 했습니다. 철저한 보호를 통해 국내 산업을 먼저 키우고, 경쟁력이 갖춰진 후에는 다른 나라에 진출하기 위해 갑자기 자유무역으로 태도를 바꿨습니다. 자유무역이 당연하다며 떠들고 있는 지금도,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교묘한 방식으로 무역장벽을 치곤 합니다. 그러면서 후발국들이 이를 조금이라도 사용하려고 하면 그에 대한 위협과 보복을 서슴지 않습니다. 가히 깡패 짓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높은 자리에 먼저 올라가기 위해 선진국들은 보호대가 붙은 사다리를 세웁니다. 그 자리에 올라간 후에는 다른 나라가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선진국의 경제 논리입니다. 이기적이고, 뻔뻔하며,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장하주 교수가 지적하는 것이 바로 그런 선진국들의 모순적인 이중 행태입니다. 선진국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후발국들도 보호무역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자국의 산업이 자라나야 그 나라의 경제가 안정될 수 있고, 그래야 국민의 삶이 안정될 수 있습니다. 그런 건강한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다른 나라와 공정한 경쟁과 협력으로 실질적인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내 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진국 기업들이 들어와 국내 기업을 몰아내고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그 나라는 실질적으로 선진국에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 기업들이 휘두르는 대로 이리저리 휘청댈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이 물품 공급을 끊거나 가격을 올리면 골병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가발전적인 면역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 산업이 허약한 후발국에 허울뿐인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을 강요하는 건 면역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자유가 아니라 자유 강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발국 내에도 선진국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진국에 빌붙어 사적인 잇속을 챙기는 권력자들, 판매 시장 확대가 필요한 대기업 집단, 소득 분배 구조에 상관없이 국가 전체의 GDP만 늘어나면 된다는 성장론자 등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진 자들 편이라는 것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주로 상위 계층이나 대기업에 있습니다. 하위 계층 사람들의 불이익 따위는 그들의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에 반해 장하주 교수는 하위 국민들, 대다수 서민의 삶을 중요시합니다. 그들 삶의 질이야말로 나라의 실질적인 경제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봅니다. 상위 5%의 사람들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나머지 하위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下主) 경제를 주장합니다.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고 보호하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한편, ‘사다리 걷어차기’는 사람들의 개인의식에도 녹아들어 일반 대중의 보수화를 유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경제 수준으로 볼 때 평범한 서민인 경우에도 상당히 보수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건 그 때문입니다. 누구나 성공을 꿈꿉니다. 지금은 대중 속에 묻혀있지만, 미래는 저 위의 차별화된 삶을 희구합니다. 현재의 경쟁을 뚫고 일단 사다리 위로 올라가면 자신이 밟고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겠다는 욕망을 갖습니다. 자신은 일반 대중과 다르다는 차별 의식을 갖습니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은 낮을지라도, 언젠가는 뭇사람들을 제치고 저 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그런 마음가짐이야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거기엔 문제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도래하지 않은 성공을 이미 기정사실화해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저 위 성공한 자리에 있을 것이므로 거기에 맞는(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고합니다. 고소득자의 세금을 올리자는 것이 왠지 꺼려지고, 부동산 보유세를 부과하거나 올리자는 것에도 왠지 거부감이 듭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데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도 왠지 반감이 생깁니다. 자신도 언젠가 그런 위치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현실은 여전히 그런 대상이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그렇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이자 인식의 모순입니다. 그 모순이 평범한 서민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장하주 교수는 외국에 머물고 있어서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TS Café에 들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참여자들은 카페에서 직접 장 교수의 얼굴을 보고 얘기 나누고 싶어 하지만, 그럴 기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안이 메일을 통한 의견 교환과 가물에 콩 나듯 하는 화상 통화입니다. 의견 교환이라고는 해도 거의 일방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에 관한 주민들의 질문 메일에 장 교수가 답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그 답변을 가지고 함께 모인 사람들 간 토론을 벌입니다. 그러다 또 궁금한 게 생기면 장 교수에게 질문 메일을 보냅니다. 그런 식의 반복입니다. 불편하긴 하지만, 참여자들의 관심과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습니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경제가 어떠하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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