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적들
<동네 카페에서 반자본의 커피를 내리다>
'카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중에서...
표창온(표창on) 국회의원, ‘정의의 적들’
법치국가에서 법을 지키는 거야 당연한 것이지만, 법이 곧 정의는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없더라도 정의롭지 못한 행위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법이 완전하지 않다는 방증이고, 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특히 법이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들에게 기울어진 상황을 지켜볼 때, 우리는 정의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법이 정의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정의의 최후 보루가 되는 건 더더욱 아니라는 걸 절감합니다. 사실, 법 정신(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 맞게 잘 적용한다면 그것이 정의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이 제대로 지켜진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법을 만든 것도 불완전한 사람이고, 법을 집행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집행 과정에서 공평하지 못한 인간의 자의적 판단과 해석으로 인해 더욱 그럴 소지가 많아집니다. 권력과 금력의 영향력이 어느 나라보다 막강한 대한민국은 그래서 더욱 기울어진 저울의 법치가 될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 조직의 프로파일러 출신인 표창온 의원은 단순히 법의 잣대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법의 잣대가 어떻게 적용되고, 그것이 얼마나 정의로운가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설사 누군가가 명목적인 법을 준수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의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잘못으로 판단합니다. 특히 그것이 금력이나 권력에 의한 것이라면 단순한 잘못을 넘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으로 인식합니다. 그는 불의를 묵과하지 않습니다. 정의에서 벗어난 행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악당에 대해서 그는 악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는 악마가 되어서라도 단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범죄에 대해서, 특히 권력을 악용한 정의의 적들에 대해서는 늘 날카로운 표창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많고, 권력과 금력에 의한 법의 농단이 비일비재한 대한민국에서 그의 주장은 경청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카페에 방문할 때 그의 모습은 악마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 비슷한 분위기도 전혀 없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참여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눕니다. 느긋하게 커피를 음미하며 직원들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말합니다. 그런 그가 카페에서 굳은 얼굴로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일보의 기자가 찾아와 카페 대표와 잠깐 인터뷰를 하자는 요청을 했습니다. 대표는 ○○일보와는 인터뷰 의사가 없으니 카페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자존심 상한 기자가 왜 인터뷰를 거절하냐고 언성을 높이며 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표는 카페가 사유지라는 설명과 함께 기자를 내보낼 권리가 있다며 재차 퇴장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기자는 언론 취재의 자유가 있다며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 차에 표 의원이 카페에 들어왔습니다. 카페와 인연이 있는 그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초지종을 듣고는, ○○일보 기자가 당장 나가는 게 맞다며 카페 편을 들었습니다. 기자는 다시 표 의원에게까지 성질을 내며 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몇 번 실랑이를 벌이다가 급기야 표 의원의 표정도 굳어졌습니다. 화난 얼굴로 기자에게 사유지 침입과 업무방해에 관한 짧고 단호한 포효를 토해냈고, 그제야 기자는 뻘쭘한 표정으로 카페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TS Café는 ○○일보와 그 계열사의 구성원에 대해 카페 출입을 금지합니다. 문 앞의 게시판에 극우 보수를 언급한 건 바로 ○○일보 같은 부류를 의미합니다. 그들과의 인터뷰도 당연히 거부합니다. 지금껏 몇몇 언론에 조그맣게나마 카페가 소개된 적이 있지만, ○○일보에는 일체의 취재도, 사진 촬영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카페도 장사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일종의 상징입니다. 정의에 반하는 존재와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느 카페와 다른 TS Café의 성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