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참으로 다양한 마주침을 겪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아는 사람과 마주치기도 하고 뜻밖의 순간을 마주하거나 이상한 인연과 마주하기도 하죠. 그러한 '마주침'들은 우리들에게 크고 작은 자국을 남기곤 합니다.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새로운 상처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애를 써서 보아도 알지 못하겠는 그런 자국도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강릉 여행을 갔었는데요. 해변 근처에 숙소를 잡아 노는 짧은 1박 2일짜리 여행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짧은 여행이기도 하고 지방에서 강릉까지 가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특별히 구경하기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사 와서 열심히 먹고 마시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기왕 강릉까지 왔는데 바다를 보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에 다 같이 바다 산책을 나섰습니다. 추가로 산책을 하다가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무언가를 더 사 오기로 했는데요. 이때, 술을 덜 마셨던 제가 자연스럽게 길 안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핸드폰을 열고 지도 맵을 켜는 순간 근처에 있는 숙소와 카페가 별표로 표시되어 있더군요.
지도상에서 그 장소들이 "내 장소"로 저장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제야 여행 내내 느꼈던 알 수 없는 기시감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이곳이 한번 와봤던 곳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죠. 어두워서 이전까진 발견하지 못했지만 20살의 친구들과 제가 사진을 찍었던 바위들 그리고 함께 3박 4일을 보냈던 숙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도 지금과 똑같이 친구들과 밤에 바다를 나와 산책을 했고 모래사장에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으며 나중엔 보지도 않을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죠. 그것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어설프게 자유를 누리던 저의 모습 그리고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지금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에 애써 걱정을 지우려고 했던 마음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그런 불안과 강박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죠. 단지 '마냥 신나지만은 않다'라고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시에 느끼던 여러 감정들에 나름 적절한 이름들을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을 뚫고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뒤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때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항상 당시엔 알지 못했던 여러 생각들 그리고 감정들을 알게 되면서 애틋해지는 때가 많습니다. 과거의 스스로에게 자그마한 연민을 느끼는 것이죠.
하지만 단지 연민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두려움도 느껴집니다.
과거를 마주할 때면 지금이 마치 과거에서 이어져 와서 완결된 순간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어딘가로 넘어가는 중이며 영원히 길의 중간에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자신을 보며 당시엔 몰랐던 것들을 뒤늦게 아는 것처럼 몇 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도 똑같이 회상하며 지금의 내가 모르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분명히 지금의 내가 스스로에게 많은 자국을 남기고 있을 텐데 이것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그걸 알게 되는 순간은 모든 것이 지나간 순간일 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저 지금의 저에게 가능한 것은 부디 미래에 이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 안 좋은 것보다 좋은 것의 비율이 약간이라도 많기를 바라는 것이겠죠. 어쩌면 그것이 어제보다 조금은 더 친절하게 그리고 더 잘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일지 모르겠습니다. 후회보다는 조금은 더 따뜻한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