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항상 피하려고 하는 주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치 이야기 혹은 사회적으로 양분화되어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주제들이 있을 텐데요. 그 주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은 절대 아니고 단지 사람들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쉬운 주제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제가 개인적으로 피하고 있는 또 한 가지의 주제가 있는데 바로 군대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저만 재미있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군 시절은 인생에서 약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차지했으니 지금까지의 삶에서 꽤나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종종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생기고 때론 입이 근질거리곤 하는데요. 그럴 땐 보통 저 혼자 회상하면서 '그땐 그랬지 허허헣' 하고 넘겨버립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저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시간들도 분명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각별한 것은 바로 군대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는 그 기억은 전역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잡담을 나눈 후에 밖에 나와 쉬던 순간입니다. 이미 전역의 기쁨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모두 발산한 상태였기에 당시에 의자에 앉아 생각하던 것은 제가 떠나고도 계속 남아 있을 공간이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떠난다고 해도 이 공간은 언제나 병사들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며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병사들 중에서 저를 기억하고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무척 이상한 기분이 들었죠.
내가 분명 이곳에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마치 이곳에서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그것이 매우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다행히 전역의 기쁨이 훨씬 커서 금방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를 다시 회상하면 그 순간이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으로 생각됩니다.
자기 분야에서 역사적이면서도 최고의 성과를 낸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한다면 사람은 언젠간 반드시 잊힙니다. 저에겐 그렇게 잊히는 순간이 곧 죽음으로 느껴지는데요. 신체적인 죽음을 넘어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 곧 죽음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지만 내가 지금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와 생각들 그리고 삶이 그렇게 영영 잊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열심히 쌓아 올린 것들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 무척 두렵습니다. 따라서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어쩌면 이후에 필연적으로 다가올 잊힘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차피 잊힐 것에 내가 너무 많은 정성과 노력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렇다고 죽고 사라질 뿐이니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모든 것에 끝이 존재할 것이라면 그 끝을 향해 무작정 열심히 달려가는 것보다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정성을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사실 그 다른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지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젠 더 이상 단순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만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위해 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더 집중하면서 스스로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되도록 미래에 다가올 잊힘은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최대한 '현재'에 집중하려고 하는 것이죠.
다만 여전히 죽음도 잊힘도 참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을 조금씩 쌓아보고자 합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간 두려움을 넘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두려움에 휘둘리진 않으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