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아무리 혼자 살려고 해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주어야 하고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있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빚도 없이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제가 MBTI 중에서도 "I"에 해당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적지 않은 스트레스라는 점은 모두에게 공통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I"라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거나 친한 친구 혹은 가족들을 만나는 것까진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는 호감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고 각자 가지고 있는 선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만나고 대화할 수 있죠.
저에게 있어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관계는 결국 흔히 말하는 비즈니스 관계였습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는데요. 간단하게는 '저 사람이 나에 대해 가지는 호감의 정도가 어떨까?' 그리고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가?' 등이 있고 더 심하게는 타인이 건네는 말들 속에서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을 찾으려고 하죠.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후에서야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일 적에는 같은 팀 프로젝트 수업으로 엮이거나 스터디 활동 등을 할 때만 신경 쓰면 되었지만 처음으로 직장인이 되고 그런 비즈니스 관계 속 사람들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저에게는 꽤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래도 저렇게까지 마음속으로 계산을 했던 이유는 첫 사회생활이니만큼 주변으로부터 계속 도움을 받아야 하고 언젠간 조직에서 1인분을 해내야 하기 위해선 스스로가 '호감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본질이 직장 내에서 '호감형 인간'이 아니며 '부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겠죠.
그렇게 자신을 엉망인 존재라 여기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자 '회사에서 늘 조심스럽게 다니는 신입사원'으로서의 자아를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주말이 시작되고 끝날 때 자신이 스위칭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일부러 주말에는 회사 사람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회사에서의 자신은 꾸며진 것이며 주말의 내가 진짜 '나'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자신의 자아를 그렇게 레고 블록 갈아 끼우듯이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갔죠.
결국 이런 상황에서 가수 덕질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덕질을 하는 동안엔 이런저런 고민들을 잊을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김윤아 님과 자우림의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요.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노래들을 참 좋아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음악도 있었습니다.
특히 자우림 4집의 <팬이야>라는 곡인데요.
I'm my fan
I'm mad about me
I love myself
매일 거울 안의 내게 말하곤 해
나는 나 자신에게 미쳐 있으며 스스로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평소엔 청춘의 고민과 방황을 노래하는 자우림인데, 어째서 이 곡에서는 이렇게나 나르시시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죠.
하지만 최근 자우림 공연에 가서 비로소 이 곡의 방점이 마지막에 찍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그날이 올까
아직 어둡게 가려진 그날
'그날'로 표현되는 날은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꿈을 이루는 순간 또 누군가에겐 마침내 도망친 날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아직 그날이 오지 않았으며 어둠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조차 없는 순간에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나는 나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의 심정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노래 속 가사들은 정말 내가 너무 멋있고 잘나서 하는 소리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하루를 시작하기 이전에 세수를 하며 외치는 일종의 다짐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다짐이란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로 하는 다짐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다짐일 뿐이기에 그 하루가 화자에게 어떤 하루가 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짐이 무색하게도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상대방에게 깨지는 순간이 오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화자는 저와는 달리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외칠 수 있는 것은 온 세상에 어떠한 계산이나 오해 없이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저는 회사에 가면 상대방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고 타인이 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꾸준히 신경 쓰며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스스로를 '부족한 인간'이라 여기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온 세상에 나를 일말의 의도 없이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텐데.... 나라도 좋아해 줘야겠다고 여기기로 한 것이죠. 물론 그래도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은 있겠지만 적어도 나를 미워하는 순간은 많이 줄지 않을까 합니다.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
지지 않고 매일 살아남아
내일 다시 걷기 위해서
나는 알고 있어
너도 나와 똑같다는 것을
주저앉지 않기 위해
너도 하늘을 보잖아
언젠가의 그날을 향해
I see the light shining in your eyes
-<팬이야> 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