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란

by Seb

"네가 좋아하는 것은 뭐니?"

위 질문은 한국에서 학교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본 적이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단순히 처음 만나는 학우에게 건넨 질문일 수도 있지만 선생님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받기도 하죠. 특히나 흔히 말하는 '진로 시간'에 많이 만나는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기 위한 시간으로 배정된 '진로' 과목의 첫 수업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 혹은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선 여러 직업 카드를 보여주거나 선생님의 일장 연설이 이어지기도 했죠. 저에게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질문은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었습니다.


진짜 솔직하게 말해버리면 뭔가 수업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조금 각색해서 "~를 좋아합니다"라고 하기엔 좋아하는 일 같은 게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단순한 질문이지만 참으로 무거운 질문이었던 것이죠. 다만 그렇게 무거운 질문으로 시작해 놓고 다음 진로 시간들은 전부 자습이거나 이상한 영화를 보는 시간으로 채워져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몇 차례 진로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거치면서 동일한 질문과 여러 번 마주했고 드디어 지금은 나름의 답을 찾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리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토록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나'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평생 가족이나 학교 그리고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의 감정과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척 익숙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어떻고 감정이 어떤지 느끼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죠. 게다가 '나'에 대한 질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좀 다 파악했다 싶으면 또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생기고 겨우 대답하고 나면 후속 질문이 우리들을 강타합니다. 최근에도 참 얼얼하게 맞은 기억이 있는데요.


지난주 한 달에 한 번 가는 독서 토론 활동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이번 토론은 황정은 작가님의 <백의 그림자>로 진행되었죠. 본 책은 삶이 가지는 '허망함'을 주요 키워드로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의 감상을 말해보는 순서에서 이 책이 '허망함'에 대해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고 작가님은 어떤 식으로 허망함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지 이야기하였는데요. 그렇게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갑자기 울컥하면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전에 조금은 준비한 이야기였고 이전까지는 막힘없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어라, 내가 왜 여기서 울컥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독서 토론을 하다가 난데없이 울어버리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죠. 다행히 헛기침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벌었고 어떻게든 답변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울컥하는 순간에 이야기하던 '희망'이라는 소재는 책 속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입니다.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부분에 큰 감동을 받았고 기억에 확실히 남기도 했죠. 하지만 이렇게 말하다가 울먹일 정도로 감정적인 동요가 있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하였는데요.


토론이 끝나고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사실 조금은 무서웠습니다. 내 마음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도 모르는 내면의 것이 튀어나와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렇게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남에 대해선 조금이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잘 알아가는 것일 텐데 솔직히 지금도 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복습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무엇을 몰라서 실패했는지 알 수 있다면 그 무엇에 대해 고민해 보고 탐구할 수 있는 것처럼 과거에 내가 스스로를 몰라 저질렀던 실수를 통해서 어떻게든 데이터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과거와 같으리라는 법은 없고 새로운 상황과 사람들은 쉼 없이 나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실수와 시행착오가 쌓이겠죠. 그렇게 계속해서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며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는 것의 반복일 것입니다. 때문에 결국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꾸만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과도 동일한 과정이겠지요.


그 과정은 다양한 상처들과 실수들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자신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무척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알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은 결국 훌륭한 지도가 될 것이니 말이죠.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잡힐수록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타인의 시선과 생각보다 스스로를 우선시하여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을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잘 맞는 선택을 할 수 있겠지요. 아마 진로 시간의 첫 수업이 항상 '나'를 향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실패 혹은 실수에 대해서 조금은 편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에는 그 실수와 실패의 결과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결국 그 경험들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되고 미래에 대한 썩 괜찮은 가이드북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나온 가이드북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선택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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