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를 졸업한 사람들 혹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겐 어떤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 100% 혹은 0%라는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99.896% 혹은 0.003%라는 식으로 항상 얼버무리며 심지어 너무나 명확해 보이는 현상조차도 100%와 0%만은 피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다.
이는 어떤 과학적인(혹은 공학적인) 현상이 발생되었을 때 사람이 모든 것을 통제하거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밀하게 실험 환경을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지역마다 미세하게 다른 중력과 대기 상태까지 조절할 순 없다. 우연히 발생되는 그러한 미세한 차이가 있기에 A가 B라는 현상의 원인이어도 A에게 100%의 책임을 줄 순 없다. 반대로 C가 D의 원인이 아니라고 해도 C의 책임이 0%라고 할 순 없다.
우연을 논리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일 텐데
결국 그 우연을 무시할 수 없어 100%와 0%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요소들은 숫자의 세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나라와 가정을 시작으로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여러 인연들은 전부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 나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주어진 것들이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은 우연히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그러한 우연을 줄이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뜻하지 않은 실패만큼 두려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많은 것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은 어떻게든 직접 조율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이 없었다면 절대 이루지 못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옆 테이블에서 동기가 영어 시험의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말을 하는 순간에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회사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수강신청에 성공하여 다른 교수님을 만났다면 지금의 대학 동기들을 만나지 못해 조금은 더 불행한 대학 생활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내가 통제하고 관여한 것보다 우연한 기회로 나에게 다가와 주었던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가능성들을 펼쳐준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개인이 노력하는 것만큼
우연적인 요소가 들어갈 여지를 남기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을 만났을 때, 성장 혹은 극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내가 언제든 틀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인연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의 단초가 만들어지도록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내 삶에서 100%와 0%를 없애고 우연함이 들어 올 준비가 되어 있다면 과학자들이 남겨둔 일말의 여지에서 새로운 이론들이 펼쳐지듯 더욱 다채로운 삶이 나에게 펼쳐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