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苦盡甘來)
개인적으로 참 싫어하는 사자성어인데,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뜻으로 자기계발서, 동기부여 영상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조언 속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사자성어이다. 보통 사자성어 그 자체로 쓰이기보다는 조금씩 변형되어가며 사용되지만 항상 지금 참으면 미래에 즐거움이 올 것이니 어떻게든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나에겐 주로 무언가를 원할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게임이 하고 싶을 땐 '대학생 되면 잔뜩 할 수 있으니 참아라', 놀러 가고 싶을 땐 '어른이 되면 어디든 떠날 수 있으니 참아라' 그리고 그만두고 싶을 땐 '지금만 참으면 곧 결실을 맺을 것이니 참아라'라는 식으로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때론 내 친구가 말했다. 이 말들은 나에게 자격의 문제로 다가왔다. 지금의 열망을 가라앉혀야 미래에 확실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에게 그 자격이 주어졌을까? 노력들은 아주 가끔 착실한 결과를 나에게 주었고 덕분에 정말 다행히도 과거엔 못해본 것들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과 시간을 갖추게 되었다. (바라던 것들이 아주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다 하지도 못할 게임을 잔뜩 사고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찔러보듯 해보는 어른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말하던 자격이 주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과거의 간절함은 이미 휘발되고 사라져 생각만큼의 만족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행복하든 불행하든 시간은 꾸준히 흘렀고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그리도 간절히 원하던 회사를 다니며 선배들을 볼 때 가끔 아득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나름대로 치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나는 또다시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고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평생? 나는 그저 평안한 행복을 바랄 뿐인데 선배들의 그런 치열함을 보면 그것이 오기나 하는 것일까 하며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득해있다 보면 선배들 중 누군가는 또다시 나에게 지금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야 미래에 편하게 늙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젠장, 또다시 자격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더 찾아온 자격의 문제 앞에서 나는 단순해지기를 선택했다. 지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그것을 하기로 결심한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그냥 예매부터 하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일단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둔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보러 가고 좋아하는 가수의 덕질을 마음껏 한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당일이나 다음 날에 먹으려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참으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모일 것이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를 위해 참는다는 행동은 지속되고 있다. 저축도 하고 때론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열심히 초과근무를 하며 회사를 다닌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것은 그 참는 과정마저도 되도록이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참아야 즐거움이 오는 것이 아니라 참는 순간에도 즐거움이 오도록 노력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있지도 않은 행복을 위한 자격을 찾아다니던 때보단 적어도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면 된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