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안을 바라보며

by Seb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말의 날씨에선 점점 봄의 기운이 드리우고 있다. 패딩을 정리하여 옷장에 넣어두고 구석에 두었던 얇은 옷들을 준비하며 바뀌어가는 계절에 대비한다. 한바탕 정리를 끝내고 잠시 산책을 나와 걷다 보면 어느새 봄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따뜻해진 기온 탓에 더욱 선명해진 흙의 냄새인 것인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 각인된 봄의 풍경 속 꽃 향기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 후각을 자극하여 계절이 바뀌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봄이 나에게 주는 인상은 '시작의 계절'이라는 것이다. 연초여도 여전히 연말의 느낌이 살아 있는 1월, 2월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밖으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의 시작은 항상 나에게 불안을 주기도 한다. 새로운 것들이 언제나 좋은 영향만을 주었던 것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올해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물어뜯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쁜 일들이 일어나긴 할 것이라는 점은 잘 인지하고 있다. 한 번도 좋은 일만이 가득한 해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불안이 생기는 이유는 결국 그 일들 때문에 내가 무너질까 봐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멈추게 되어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천운이 있어 아직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경험은 없지만 거의 그 직전까지 갔던 기억은 여러 번 있는데, 그때마다 항상 나를 괴롭혔던 생각은 '다른 사람들은 잘 이겨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러는 걸까'라는 것이다. 특히나 힘든 내색 없이 어떤 일이든 척척 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 생각이 더 심해진다.


결국 내가 뒤쳐질까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같은 불안을 느꼈던 과거의 나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그것이 나 혼자만의 불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사실을 실감하는 곳은 플레이리스트 유튜브 영상의 댓글들이다. 불안 그리고 상실을 이야기하는 노래들에 대해서 댓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며 위로해 주어 고맙다는 글을 보면 내 불안이 나만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댓글들은 공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찾은 공원에서 상념에 빠진 채 산책을 하는 사람들. 나보다 훨씬 멋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공원에 오면 여지없이 자신만의 불안과 고민에 빠져 심각한 얼굴로 걸어 다닌다. 그리고 어쩌다 흘린 생각의 조각들이 댓글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그렇게 공원에선 누구나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방향을 따라 조금씩 걸어 나간다. 때론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어쩔 땐 잔디밭에 누워 거친 숨을 고른다. 그 광경 속엔 앞서가는 사람도 뒤처진 사람도 없다. 그저 여러 우연과 의지가 겹쳐 그곳에 위치해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상상하게 되면 3월 말의 따뜻한 기온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나 또한 결국 공원 한복판에 잠시 멈춰 서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남들보다 빠르게 걷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결국 느리게라도 조금씩 걸어보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어디에 있건 그저 내 마음이 닿는 곳으로 가보겠다는 마음 말이다.


그리고 조금은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걸어가다 넘어져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들을 일으켜주고 부축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올해엔 남아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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