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통해 얻는 확신

by Seb

나는 소설이 좋다.


에세이, 수필 그리고 시도 좋아하고 곧잘 읽지만 언제나 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소설이다. 작가가 펼쳐 놓은 세상 속에서 각각의 갈등과 시련을 가진 채 움직이는 인물들의 삶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를 발견하고 때론 과거의 한 순간을 다시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권의 책에서 그치지 않고 생각이 쭉 뻗어나가는 감각은 항상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며 이것이 소설에 빠져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다른 형식에서도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음에도 특히 소설에 더욱 마음이 가는 이유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필연적으로 이들은 모두 어떠한 결핍을 느끼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잃었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타인과 부딪히고 각종 사건이 발생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이야기들은 당연하게도 우리들의 삶과 닮아있다. 이야기 속 인물들처럼 우리도 마음속 어떠한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과 만나거나 일을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야기의 힘이 강하게 나타나는 소설에서 나는 더 많은 공감과 감동을 얻는다.


결핍이 있다는 것 이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소설 속 인물과 독자 모두 서사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중학교 때의 나, 고등학교 때의 나 그리고 성인이 된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사건들과 사람들을 겪으며 변화해 왔다. 다만 그 변화의 한복판에 있는 현재의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지금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고 풀어야 하는 관계들이 있기에 그 변화는 항상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깨닫는다.


이것은 소설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소설의 시작에서 만난 인물과 책을 덮을 때의 그 인물은 분명 달라져 있다. 그러나 현실 속 변화와는 달리 소설 속의 변화는 독자가 알아차리기 무척 쉽다. 인물들의 감정을 제3자의 시선으로 유추할 수 있고 때론 독백의 형식이나 1인칭의 시점으로 직접적인 전달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텍스트를 읽으며 실시간으로 느끼는 인물들의 변화는 나에게 한 가지 확신을 준다. 지금으로선 보이지 않겠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이 계속 변하고 있는 중이라는 확신을 말이다. 그 확신은 가끔 나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우울감이나 어떠한 상실감도 다른 무언가로 치환될 것이며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결국 다 지나가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설 속 인물들과 독자들의 공통점을 이야기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는 이야기와 함께 끝나게 되지만 독자들의 삶은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다. 캐릭터들이 경험한 변화는 끊임없이 변주되어 계속 존재할 것이다. 지금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아득한 어둠도 찬란한 빛도 끝내 지나갈 것이며 그 자리엔 달라진 내가 남는다.


다만 이후에 이어질 삶은 기왕이면 조금은 더 쾌활하고 유쾌한 모험 활극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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