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락처를 정리하다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름을 발견했다. 그 이름은 대학교 선배의 것으로 나와 같은 밴드 동아리 멤버였다. 당시 이미 동아리 회장이 있었음에도 악기를 다루는 실력이나 공연을 해본 경험이 압도적이었던 그가 활동의 대부분을 이끌고 있었다. 합주실 예약부터 시작하여 곡의 공평한 선정 그리고 장비의 대여까지 능숙하게 일들을 조율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 그 사람이 처음엔 멋있게 느껴졌다. 나를 포함한 다른 동기들은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특유의 완벽주의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 있으니 앞으로도 똑같이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는 어떤 일이건 작년보다 나아지기를 원했고 동아리실의 환경부터 각종 장비의 상태까지 까다롭게 확인하고 정비했다. 그때 나는 그와 같은 악기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대부분의 일들을 둘이 함께 했다. 아마 신입 부원 중에선 유독 나와 이야기를 많이 나눠 친한 상태였고 다른 동기들은 그를 어려워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덕분에 다른 부원들보다 훨씬 많은 잡일들을 했고 더욱 피로해져 갔다. 다행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에 부당한 지시를 내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머감각이 풍부해서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이 즐거웠던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몸이 피곤하고 자꾸만 시간을 빼앗기니 불만이 커져갔다.
어쩌면 1년간의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한 뒤, 그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은 것도 그 불만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일 뿐이니까. 사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 사람의 생일이나 학과 행사 혹은 회식 자리를 빌미로 연락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동아리를 나왔어도 그에게 있어서 여전히 나는 미숙한 1학년 학생이라는 인식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와 함께 있으면 내가 자꾸만 아랫사람이 되는 것 같아 더욱 연락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 군대를 다녀오고 2, 3, 4학년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팀 프로젝트들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한 후배들이 생겼다. 정신 차려 보니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된 것인데, 그제야 그 사람과의 기억들이 그저 고생만 존재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 때문에 내가 힘든 일들을 하는 것이 미안하여
나에게 어려운 악보를 쉽게 칠 수 있도록 편곡해 준 일
다 같이 대청소를 하는 순간에 나에게 잔심부름을 시켜
덜 고생하도록 해준 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도
함께 작업할 때마다 사준 커피와 간식들
직접 선배가 되어보니 자잘한 부분에서 나를 챙겨주는 것이 경제적으로 꽤나 부담되었을 것임을 알게 되었고 본인의 없는 시간을 쪼갠 순간이 많았음을 알았다. 결국 그는 나름대로 나에게 품었을 미안함을 표현하고 해소하고자 노력 했던 것이다. 다만 20살의 미숙했던 나에게 그는 궂은일만 떠넘기던 선배였기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그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품고 있다. '그 마음들을 제때 알았다면 연락이 끊기지 않고 조금은 보답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아직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여러 마음들에도 미안함을 느낀다.
그 선배의 친절과 다정함을 뒤늦게 발견한 것처럼 어떤 마음들은 뒤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그저 사라지지 않고 어찌 되었든 도착하는 것이다. 어쩌면 선배가 나를 챙겨주었던 것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써서 전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도착한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겐 친절을 베풀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당장은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몰라주는 것 같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