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피곤한 날이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도저히 무언가를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미뤘던 청소도 해야 하고 걸렀던 식사도 해야 했지만 마치 전원이 부족한 기계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런데도 회사에서 일을 하던 관성이 남아 있어 신경은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처럼 팽팽했다. 뒷목이 뻐근하고 눈의 움직임이 둔했다. 무언가를 하기보단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 상태였다.
그대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뻐근한 뒷목 탓에 몸이 편하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조용히 단잠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이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는 몸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아직 꿈과 현실 그 언저리에 있던 무거운 몸을 이끌며 누가 되었든 잘못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여 찾아온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집주인이라면 미리 연락을 했을 것이고 만에 하나 도둑이라면 얌전히 무엇이든 줘야겠다 판단했다. 그렇게 현관으로 향하는 미닫이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50대 중반으로 짐작되는 여자였다.
검붉은 색 모직 코트를 입고 있고 절반은 검은 뿔테 나머지는 금테인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 이외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인상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얼굴에 또렷한 상이 맺히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이런 차림새라면 도둑이 아닐 것이라 생각해 잘못 찾아온 사람이라 추측했다.
때문에 어떻게든 설명해야 했다. 잘못 들어오셨다고, 전에 살던 분은 작년에 이미 이사하셨다고 그리고 여긴 나 혼자 살고 있으니 얼른 나가셔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런 표정 없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그 사람한테 말이 나아가지 않았다. 입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힘은 들어가지만 의지대로 근육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를 몸으로라도 막으려고 하던 찰나 다시 눈을 떴을 땐 침대 위였다.
지독한 악몽이라 생각했지만 무언가 달랐다. 주변이 지나치게 어둡다. 분명 잠들었을 땐 오후 5시로 아직 해가 환하던 시각이었다. 30분 알람까지 맞췄으므로 이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잠들었을 리가 없다.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에서 깨곤 했으니까. 그러나 다른 것은 주변 환경뿐이 아니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입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과 같은 감각이다. 몸에 힘을 주지만 근육이 무언가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몸을 보고 싶어 고개를 들어도 역시 움직여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생각과 눈을 굴리는 것뿐이었다.
먼저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피곤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큰 병을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를 잘못 먹었던 것일까? 그러곤 정말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주변이 환해졌다. 마침 팔을 들어 올리기 위해 힘을 쓰고 있던 탓에 팔이 튀어 오르듯 올라갔다. 드디어 잠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가위눌림을 격하게 겪었구나 생각하실 것이다. 후에 인터넷에 '가위눌림'검색했을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과 거의 같은 경험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나에겐 처음으로 겪는 현상이었고 누군가 내 집에 침입한다는 꿈이 지나치게 생생하여 잠에서 깬 뒤에도 얼어붙은 듯 한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
마비의 경험도 무서웠지만 더 무서운 것은 나 스스로였다. 도대체 뭘 품고 있길래 그런 꿈을 꿨던 것일까. 그리고 무얼 견디고 있었기에 그런 긴장상태가 잠자리까지 침범했던 것일까. 지금도 그 답을 명쾌하게 내리지 못한다. 따라서 언제 이것이 겉으로 드러날지 몰라 무섭다. 자신이 이토록 타인처럼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이렇게 글로 경험을 남기는 것은 경험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모르던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지만 헛된 기대였던 모양이다. 오히려 글을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까 고민만 깊어졌다.
......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무래도 어정쩡한 현상태 그대로 글을 끝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몸에 피로가 많이 쌓였음은 알았으니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탐구보단 휴식일 지도 모른다. 언젠간 터지게 될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