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이 봄의 막바지에서 나를 되돌아본다.

by 변미용

봄의 막바지를 여름의 신록이 먼저 비집고 들어와있는 오묘한 날들의 연속이다.

오늘, 기간상으로는 일주일을 붙잡고 있던 조조모예스의 559쪽짜리 소설 읽기를 마쳤다. 평소 패턴대로라면 이틀이면 읽었을 책을 며칠씩이나 붙들고 있었던 특별한 이유는 없다. 게다가 감성 자극의 1인자인 조조모예스 작품이라면 더더욱 핑계거리도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터닝포인트를 가져보려던 의도가 어긋나 실패를 맛본 직후라 내 삶의 평범한 리듬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


울지 않았다.

그건 조조모예스의 전작들을 읽으며 폭풍 눈물을 보였던 이전과의 또다른 차이점이다. 그리고 감성 자극의 흔한 하이틴 로맨스식 연애소설에서 한발 나아가, 개연성을 부여하고 소설의 플롯에 힘을 실으려는 작가의 고뇌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졌다. 즉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졌음을 의미하는걸로 나름 조심스럽게 해석해본다.


`당신이 남겨 두고 간 소녀`는 동명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당연히 허구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과거의 한축과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인 그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소설의 줄거리 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여기서는 그냥 담담하게 제목이 주는 여러 가지 느낌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당신이 남겨 두고 간 소녀`는 작품을 이어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의 사랑의 인연이고, 삶의 이유이며,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원인이기도하다. 도발적이고 거침없는 눈빛의 소녀는 인생의 빛나던 한때가 주는 의미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게도 한다.


나는 어떨까?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을 보면서 이 봄의 막바지에 모든 것을 접고 있지는 않을까? 불혹을 넘어선 지도 사년째, 사십대는 불혹이 아니라 매순간 유혹이라는 `매혹`을 아름다운 꽃들에게서, 길거리의 발라드에서, 곳곳에서 여실히 느끼고 아숴워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이 긴 시간 후, 내 인생의 가장 빛나던 한 때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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