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여행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by 변미용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무더위의 기세가 누그러지고 선선한 아침 바람을 가르며 출근하는 길, 도로변 논의 벼들이 어느샌가 황금빛을 띄기 시작하고, 나무들도 조금씩조금씩 제 몸을 불태울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며,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원주 연세대학교 은행나무길(출처 : http://blog.naver.com/science691)

풍경이 사람을 위로해준다고 믿는 여행하는 시인 최갑수의 [당신에게, 여행] 이라는 책이 있다.

우리나라 감성 여행지 99곳에 대한 빈티지풍의 사진과 함께 여행지에 대한 에세이를 시인다운 깔끔한 어조로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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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사람을 위로해준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일이 고되고 힘들 때, 누군가의 거짓된 말과 행동 때문에 마음이 다쳤을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힐링'이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여행과 사색이 보너스처럼 여행자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덤으로 주면 더 좋을 테지.


그럼, 나에게 여행은?

내게 여행은 '함께'이다.

함께 떠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아직도 여전히 풍경보다 풍경 속의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풍경도 사람과 함께...그래야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증도를 떠나 부안으로 가는 길에 '모항'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떠올라서 찾아본 시 한 편을 소개한다.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부안으로 가는 서해안 길은 감성이 파도처럼 마음 속에서 출렁이게 했다.

안도현 시인처럼 멋드러진 시를 읊을 수는 없어도, 그저 눈으로 마음으로 출렁이는 감성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날이었다. '함께'여서 더 좋은 날이었다.


모항 가는 길
- 안 도 현 -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지 밥 먹다가 석 삼 년 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거야
먼 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듯 한 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위에 하늘 한 폭으로 가둬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 줘야 아나?
걱정하지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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